3인 3색, 세 사람의 감독이 말하는 한국에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이는 세 사람, 그만큼 다른 이야기들의 지향점은 한 곳에 있었다.


첫번째 작품. <가리베가스 (Garivegas, 김선민, 2005)>

구로공단과 가리봉동. 공장의 매연으로 그득한 한국근대화의 상징. 젊은 날 빠듯하게 일하며 산업의 역군으로 칭송받았던 공순이들. 하지만 현재의 서울은 그들의 흔적을 지워내기에 여념이 없다.

라디오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선화는 가리봉동의 조그마한 쪽방에 살고 있다. 디지털단지의 조성과 함께 그녀의 회사는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정든 집을 못내 떠나기 아쉬운 선화는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나이가 찬 그녀를 반겨주는 곳은 쉽게 찾기 어렵다. 선화는 임신한 절친한 친구와 따뜻한 이웃사촌들의 아쉬움을 뒤로, 회사를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이삿길에 부셔진 오랜 추억이 담긴 장롱. 주인아주머니의 묵직한 열쇠꾸러미.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또 다른 절친했던 친구와의 모습이 담긴 학생 때의 사진. 산울림의 향수는 그렇게 그렇게 잊혀져간다.

김선민 감독을 잘 몰랐던지라 프로필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소년과도 같은 앳띈 모습과는 달리 30대 중반의 유부녀셨다니... 충격이다. 현재 중국인과 한국인 간의 우정을 그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한다.






두번째 작품. <리터니 (Returnee, 마붑 알엄, 2009)>

열심히 일해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 소위 3D업종에서 묵묵하게 일하며 한국경제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은 한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의 대접은 받지 못한다.

마붑 알엄 감독의 언어엔 항상 “마음을 열어”가 있다. <리터니>는 이주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강제추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쫓겨난 사람들>의 속편과 같은 작품으로, 쫓겨나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에 보다 집중한다. 강제로 쫓겨난 억울함에 원망이라도 할만 하건만, 고향의 집에서 반겨주는 딸을 보고 금세 또 웃음을 지어버리는 사람들. 좌절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다시금 힘을 내는 그들의 모습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전 리뷰에서 발췌)

마붑 감독은 정말 바쁘다. <반두비>에 이어 그가 출연한 새 영화가 올겨울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해녀와 이주노동자간의 우정을 그린 극영화에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있다고 하니, 그의 "마음을 열어"가 어디까지 진화해갈지 기대가 된다. 물론 마붑 감독이야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는 때를 더욱 고대하고 있겠지만. :)






세번째 작품. <호명인생 (최창환, 2008)>

최창환 감독의 씁쓸한 자전적 이야기. 일용직 건설노동자에게도 차별은 있었다.

용역회사에서 일을 받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혁. 그는 회사에서 우연히 만난 갑보와 더불어 건설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함께 삽질을 해나가는 갑보에게 인혁은 열심히 말을 걸어보지만, 갑보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기만 하다. 계속해서 담배를 빌리며 뻔뻔하게 친한 척 하는 인혁에게, 마침내 갑보는 자신은 조선족이라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연다. 술도 마시고 나름 일을 즐겨가던 두 사람. 하지만 이들의 머리 위로 돌무더기가 쏟아지는 사고가 발생해 작은 부상을 당하게 되고, 두 사람을 대하는 회사의 전혀 다른 태도는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안겨준다.

연극적인 구성. 걷어차이는 맥주 한 캔의 슬픔. 인혁을 피하는 버스뒷자리의 여고생. 냄비 밖으로 튀어나온 5만원짜리 사골. 비슷한 처지의 호명인생이라도 삶을 짓누르는 무게는 참으로 다르다.

최창환 감독은 대작좀비영화를 꿈꾸다 제작비로 인해 잠시 미뤄두고, 12월 중 전투 장면이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 전쟁영화를 크랭크인한다고 한다. 왠지 특이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될 듯.



참 다르지만, 잊혀지고, 거부당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보아왔다는 점에서 세 사람의 비애감은 비슷하게 느껴진다. 흔한 질문처럼 정말 돈이 뭐길래 이토록이나 사람들에게 비참한 마음을 주는걸까. 참 거부할 수도 없으면서도 마냥 또 좋아하기에는 미운 점이 많은 것 같다.

월례비행은 매월 마지막주 화요일 오후 8시, 인디스페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