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이랜드 사태라고 불린 노사대립은 한국사회를 뒤흔든 뜨거운 이슈였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발효에 앞서 이랜드는 대규모 해고와 선별적 정규직화로 대응했고,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노조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김미례 감독의 <외박(Weabak, 2009)>은 514일에 걸쳐 계산대와 자신의 일상에서 빠져나와 투쟁을 이어갔던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한국사회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인 것 같지는 않다. '투쟁'이라는 단어와 깃발이 주는 거부감. 이슈화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리는 노동계의 투쟁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져있다. 더러 이슈화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공감은 거의 얻지 못한 채로 진행되는 자기들만의 싸움. 전력적이고, 절박함이 가득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는 투쟁은 사측과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대중에게까지 철저하게 외면된다.

<외박>은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긍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깃발을 든 행진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다.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여성들만이 있을 뿐이다. 김미례 감독은 '투쟁'이라는 단어가 영 어색하기만 그녀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스크린에 담아낸다. 실수투성이의 8박자 구호, 넋살좋은 중년여성들의 맛깔나는 입담. 외박을 나온 그녀들은 즐겁게 시를 쓰고 노래한다. 가족들도 엄마와 아내를 응원하며 힘을 보탠다.

민노총은 이랜드 파업을 전략적인 이슈로 만들었고, 민노당이나 각종 지식인들 또한 연이어 지지선언을 보냈다. 마치 금방이라도 끝날 것만 같았던 파업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열흘이 넘어간다. 점점 지쳐가는 사람들과 잊혀지는 그녀들의 투쟁.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치뤄진 총선에서 민노당은 참패하며 정치라고는 전혀 몰랐던 소박한 여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도와주던 이들은 점점 그녀들을 냉대하고 떠나간다. 생계의 문제 또한 심각한 위협이 되어간다.

김미례 감독은 현재의 노동계의 투쟁방식에 날선 질문을 던진다. 80년대식의 8박자의 구호와 행진곡, 딱딱 끊어지는 군대식의 동작들은 불편함만을 줄 뿐이다. 사회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구태의연함. 무엇을 말하느냐만큼 어떻게 말하느냐 또한 중요하다. 20세기 초 유럽의 노동운동이 탄력을 받은 것은 단지 공격적이기만 해서가 아니라, 생활과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를 만들었으며,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쉼 없는 투쟁은 지치기 마련이지만, 삶 속에서 녹아드는 축제는 쉽사리 지치지 않는다. 즐겁다면 목이 쉬어라 떠들지 않아도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노동자에 대한 영화에서 쉽사리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을 상상케하는 시놉시스와는 달리, 김미례 감독은 투쟁의 양상이나 큰 그림을 과감하게 포기하며 신선한 접근법을 시도한다. 여성노동자들이 파업의 과정에서 겪는 일들에 대한 담담하고 조용한 묘사.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녀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오랜 외박의 기간. 이제 그녀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숨결의 흔적만은 여전히 영화 <외박> 속에서 친근하게 살아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