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09.11~2009.09.20
장소 : 남산예술센터(구 남산드라마센터)

<오늘, 손님 오신다>는 구 남산드라마센터가 이름을 바꾸고 새단장한 남산예술센터의 개막을 알리는 첫 공연으로 3명의 작가와 3명의 연출가, 3개의 극단이 참여한 옴니버스 연극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시작이란 어떤 일에서건 중요한 일이다. 갤러리 가이아가 공간에 부여된 이름에 걸맞는 자연을 소재로 한 개인전으로 첫 문을 열었듯, 남산예술센터 또한 동시대예술의 역량을 측정해볼 수 있을만한 실험적인 연극으로 상쾌한 첫 발을 내디뎠다.

<오늘, 손님 오신다>는 폐쇄적인 공간성이 주는 단절감이 주요한 열쇠가 된다. 1층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2층의 성형외과와 주거공간, 그리고 건물 뒷편의 쓰레기장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렇다할 영향도 존재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이들이 같은 공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유일하게 증명해주는 건 CCTV의 차가운 시선 뿐이다. 벽으로 둘러쌓인 1층과 2층, 쓰레기장이라는 3개의 공간을 지닌 건물, 그리고 이들과는 완전히 유리되어 CCTV를 감시하는 별도의 공간 등, 연극의 무대는 3+a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 앞 광장에서, 광장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최치언 작가와 최용훈 연출가의 <얼굴들>로 극은 시작된다. 알듯 말듯 아리송한 백 개와 천 개와 만 개라는 숫자적인 비유를 통해 동어반복적인 개념들의 나열이 주는 호흡감이 재미있다. 건물로 설정된 주무대 앞의 조그마한 공간과 관객석으로 만드는 광장, 2층의 성형외과와 결코 문이 열리지 않는 가정집, CCTV를 감시하는 참호 또한 모두 <얼굴들>이 침투해있는 공간들이다. 옴니버스 속의 조그마한 옴니버스 <얼굴들>은 주변적인 공간활용만큼이나 지속적으로 연극의 주위를 돌며 공간에 대한 거리를 유지한다. 극의 흐름을 끊는듯한 노골적이고 산만한 어조가 다소 아쉽지만, 연극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부여해주는 다각적인 공간활용이 이색적이다.

장성희 작가와 구태환 연출가의 <미스터리 쇼퍼>는 1층의 전면무대에 펼쳐진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미스터버거'의 하루를 보여준다. M이 강조된 로고라든지 광고 속 카피를 읊는 것 같은 대사 등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맥도널드'를 한 눈에 떠올리게 하려는 각종 장치들이 흥미를 끈다. 밤이 되면 고객들의 발걸음을 막는 2층의 이용시간안내, 직원들의 과도한 친절과 상품판촉, 획일적인 메뉴와 빨리빨리 속에서 함몰되는 타자에 대한 배려. 패스트푸드 공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이 명동에 위치해있는 극장의 장소성과 맞물려 탁월한 상징성과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분명한 캐릭터가 주는 매력 또한 <미스터리 쇼퍼>의 강점으로, 패스트푸드점의 카운터를 맡아 톡톡 튀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김정현과 배달부 역으로 특이한 느림의 미학이 있는 배우 서강우, 해피밀 인형을 모으는 오타쿠역의 배우 최진호, 우리가 어떻게 이 나라를 만들었는데라며 젊은이들을 호통치며 다니는 노인역의 배우 유정기 등의 호연이 돋보인다.

학교에 대한 냉소를 테마로 한 고연옥 작가와 고선웅 연출가의 <가정방문>에선 4명의 아이들이 조용하게 놀고 있는 건물 뒷편의 쓰레기장을 배경으로 의욕에 가득찬 선생님이 찾아온다. 선생님은 학교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이들을 설득하지만 아이들의 어머니는 학교에 대해 마냥 부정적이기만 하다. <가정방문>은 이 연극에서 가장 희극적이고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반전의 분위기가 강렬하다. 갑자기 환상에서 현실로 떨어지는 작가의 언어 속에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학교에 대한 불신의 시각을 오롯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마침표는 모호하지만 무대를 활용한 마지막 씬에서 진한 비극의 향기만큼은 은은하게 느껴지며, 선생님 역할을 맡은 배우 정승길의 유연한 연기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오늘, 손님 오신다>의 3개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낯선 손님이 일으키는 파장을 통해 일상의 모습을 조망한다. 본사의 감찰직원을 기다리는 패스트푸드점, 쓰레기장에 찾아오는 선생님, 성형외과로 찾아왔던 한 여자, 열릴 줄 모르는 문 뒤로 숨어있는 가정, CCTV 감시참호 속으로 들어오는 스산한 바람, 그리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까지, 공연장 안의 모든 이는 손님들이다. 손님들은 때로는 선의를 가지고, 때로는 악의를 품고, 혹은 어떤 것을 바라거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또는 아무 이유없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돈된 공간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고 떠나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