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시작된 인권위의 영화만들기는 <여섯 개의 시선> 4편과 애니메이션판 <별별 이야기>의 2편을 포함해 어느덧 6편이나 이어져왔다. 가장 열심히 하지만 가장 성과를 못낸다는 빈축을 듣기도 하는 인권위. 그래도 꾸준한 행보만은 칭찬해줄만한 것 같다. 필자 또한 은근히 매년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곤 하는 인권위표 영화들을 기다리곤 하는 걸 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그들의 다양하고 뚝심어린 활동이 영 의미없지는 않았나보다.

<별별 이야기>는 6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인권이야기라는 <여섯 개의 시선>의 형식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옴니버스형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여섯 개의 시선>에 불편해도 봐야할 것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왔지만, 불편한 것들에는 영 시선을 주기가 꺼려진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떤 걸 말하느냐만큼이나 어떻게 말하느냐 역시 중요하다고나 할까. 그러한 측면에서 2005년작 <별별 이야기>는 인권위 작품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만한 접근을 보여주었다.

첫문을 여는 유진희 감독의 <낮잠>은 파스텔톤의 따뜻한 색감과 이야기가 마음에 와닫는다. 낮잠을 자는 아빠와 딸. 곤히 자고 있는 소녀에겐 한 쪽 손이 없다.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끝이 없는 마음의 담장으로 인해 소녀는 외톨이로 지낸다. 마침 한 쪽 발이 없는 강아지를 만난 소녀. 기뻐하는 딸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아빠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권오성 감독의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보여주는 표정이 사랑스러운 클레이애니메이션이다. 마치 "미운오리새끼"처럼 양들로 가득한 축사에 사는 염소 한 마리가 주인공이다. 대장 양을 중심으로 한 양들은 자신과는 다른 염소를 홀대하고 괄시한다. 그렇지만 유독 대장 양의 딸만큼은 염소에게 친절하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염소는 어떻게든 양들과 어울리기 위해 눈물어린 고군분투를 이어간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5인 프로젝트 팀의 <그 여자네 집>는 필자가 지금까지 본 모든 애니메이션 가운데에서도 첫 손 안에 꼽을만큼 뛰어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색채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단조로운 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남편의 무심함 속에서 직장을 다니며 육아와 집안일을 모두 떠맡는 아내의 일상이 마치 자신이 직접 겪는 일처럼 와닿는다. 필자 또한 감독의 위트넘치는 화면처리에 재미있어하면서도 남편의 무심한 행태에 혈압이 높아져가는 걸 느껴야만 했다.

<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 이애림 감독의 이 작품을 도대체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한국의 고전적인 느낌을 지닌 블랙코미디? 그럴듯한 한자성어를 붙였지만, 작품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살이 많고 골격이 큰 여자'가 된다. 어두운 흑백톤을 주조로 강렬한 빨간색을 간간히 섞으며, 예쁘지도 않을 뿐더라 덩치마저 커다란 여자가 살면서 겪는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웃음 속에 섞여있는 씁쓸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대개 '사람이 되어라'는 철없거나 냉혹한 사람들에게 하는 일종의 충고이지만, 박재동 감독은 <사람이 되어라>에서 이를 살짝 비틀어 정말 학생들을 사람이 아닌 고릴라로 표현해낸다. 사람인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만 자신처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스스로의 길과 흥미를 찾아가는 창의력 있는 학생들이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언어유희적인 비유를 통해 비꼬아보여준다.

6편 중 나머지 한 편인 이성강 감독의 <자전거 여행>은 필자의 감성과는 맞지 않아 누락되었다.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던 <별별이야기 2 : 여섯 빛깔 무지개, 2007>의 첫번째 에피소드 <세번째 소원>이 만약 <자전거 여행> 대신 포함된다면 <별별 이야기>의 6편은 최고의 선물이자 소장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안동희, 류정우 감독이 공동제작한 <세번째 소원>은 앞이 안 보이는 여성에게 어느 날 갑자기 '소원실행위원회'의 요정이 찾아온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녀에게 요정은 15살 때 소원을 빌었지 않냐며 다그치는 아줌마스러운 요정. 그제서야 납득을 한 그녀는 자신의 소원이라면 오직 눈이 보이는 것 뿐이라며 한껏 기대를 한다. 하지만 요정은 각종 약관들을 일러주며 이미 있는 장애를 고쳐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여자는 다른 소원은 필요없다며 실망하고, 그런 그녀에게 요정은 친절하게도 불편사항을 상담할 고객센터의 연락처를 가르쳐준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소재들로 구성한 유쾌한 작품으로, 심금을 울리는 감동 또한 만만치 않다.

앞서 소개한 <별별 이야기> 6편의 애니메이션들은 인권을 넘어 작품 자체만로도 무척이나 가치가 있어, 그냥 잊혀지기엔 너무나도 큰 아쉬움을 남긴다. 극장가와 TV가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은 재패니메이션과 미국에서 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거대한 자본의 장막 아래에 있는 메이저작품이나, 혹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작품들도 충분히 의미를 지닐 수는 있겠지만, 한국감독들이 저예산으로 자신만의 감수성을 투영한 단편애니메이션들이 가지는 매력과 의미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