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이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원전소설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은 원전소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으나,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큰 혼란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드라마 <로스트(Lost)>와 비슷한, 특유의 비선형적 시간진행으로 인해 기본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며, 선결지식이 없다면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다.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ブギーポップは笑わない)>는 인간의 고독과 상실을 다루고 있다. 스릴러, 호러, 심리미스터리 등 이 애니메이션을 수식하는 장르는 많지만 가장 근접한 건 판타지 쪽인 것 같다. 무대가 현대사회이며 환상이라는 개념을 현대적 불안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판타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현대화된 판타지이다.

오프닝부터 실사와 만화, 문자 등이 음울한 색조, 화려한 형태, 모호한 선들과 뒤섞여 독특한 영상처리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의도적인 화질열화와 마치 개인들간의 벽을 쌓아놓는 것만 같은 비네팅(주변부 귀퉁이가 어둡게 나타나는 현상) 처리를 보여주는 본편 또한 만만치 않다. 옴니버스적인 에피소드 간의 비선형적인 구조, 불길하고 기계적이며 노이즈가 가득한 음향 등은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도발적인 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짧은 시리즈에 너무 많은 것을 우겨넣다보니, 응집력이나 통일성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추진력과 몰입도가 급격하게 저하되는 점은 주된 단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은근히 중독성있는 OST와 다분히 철학적이고 매니아적인 소재를 지닌, 충분히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