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고전목록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 소설의 특이한 제목을 기억하시는 분은 적지 않을 것 같다. 필자 또한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괜스레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라는 제목만으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고갱의 실제 삶을 모델로 하여 더욱 유명한 이 책은 왠지 낭만적인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냉소적인 비웃음으로 가득한 책이다.


고전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느낌은 고티타분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전을 들여다보면 고리타분하다던지, 아니면 뭔가 어렵다든지하는 생각들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필자는 데카르트의 "성찰"이 일기같은 느낌을 준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으며, 플라톤의 "국가"가 할아버지들이 나누는 잡담 같다는 데에 어이없기도 했다. <달과 6펜스> 또한 넘쳐나는 여성비하와 공격적인 표현에 놀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아마 여자의 잔인성 중에서, 자기는 사랑 받고 있지만 자기 쪽에서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잔인성만큼 심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여자에게 부드러움이나 관용은 전혀 없으며 다만 미칠 듯한 초조가 있을 뿐이다. (본문 중에서)

필자는 아마도 서머셋 몸이 대단한 독설가가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직설화법은 예리하면서도 통쾌하고 상쾌한 기분까지 준다. 어느 날 갑자기 주식중개인에서 화가로 전향하는 한 남자 스트릭랜드와 그 주변인물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면밀하고도 정교한 고찰이 진행된다.

고생이 사람의 성격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행복은 어쩌다 그런 작용을 하는 수도 있지만, 불행은 대개 사람을 인색하고 집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본문 중에서)

예술만을 쫓아가는, 말 그대로 진정성이 넘쳐나는 화가와, 일상 속에서 이러한 화가를 바라보는 주변인 간에 극명한 대비는 이 책이 가지는 주된 묘미이다. 지금까지도 흔적이 남아있는 모더니즘 세계에서의 예술가에 대한 관념을 극한까지 밀어부쳤으며, 또한 이 관념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때때로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공격적일 때도 있지만, 서머셋 몸이 펼쳐내는 언어 속에 담긴 통찰만큼은 따끔거리며 남는다.

본 리뷰를 쓰며 과연 누구에게 이 책을 추천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어려운 문제이다. 필자라면 아마도 사랑과 행복에 있어 어설픈 사람들에게 권할 것 같다. 어찌되었든 <달과 6펜스>는 맹목적으로 자신만의 사랑과 행복을 찾아떠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