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포스터 때문이었다. 까만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마치 신화 속의 여신처럼 느껴지는 3명의 여성들을 상상하는 모습을 그린 하늘색 일러스트. 단숨에 그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틀, 단순화된 세부라인이 표현해낸 여성들의 표정, 영화 <무지의 시대(L'Âge des ténèbres)>는 포스터부터 특별하다.

쟝 마크 르블랑(마르그 라브레쉬)는 이렇다할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직업적으로 성공했으며 아무런 교감도 나누지 못하는 아내, 자신을 본 척도 하지 않는 딸과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는 여성상사 등 그와 관계맺고 있는 여성들은 무의미하기만 하다. 그는 스스로를 위대한 인물로 상상하며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쟝 마크는 상상 속에서, 영화스타 베로니카(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아내와 상사에 대한 환상을 꿈꾸기도 한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잠시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는 것만이 현실 속에서의 유일한 도피처. 이 영화는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그 이면이 가지는 씁쓸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 담배를 피워야 했다.

상상과 담배로 일상을 견뎌나가던 쟝 마크에게 큰 전환이 찾아온다. 그가 돌봐드리던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그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의 허무함을 깨닫게 된다. 쟝 마크의 모습에서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무지의 시대>인지 알게 된다. 현실 속에서 불가능하기에 상상 속에서 대화할 수 밖에 없는 상대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커녕 알려고도 들지 않는 관계들, 사람들이 쳐놓은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블랙코미디.

삶은 언제나 외롭고, 진정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찾는 건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렵다. 항상 타협을 선택하던 한 남자, 그는 이제 더 이상 타협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