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논란과 흥미로운 의견이 오갔던 작품이었지만,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설국열차"는 분명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기차 안이 아니라 기차 밖의 세상을 세계로 바라본다면, 나름대로 또 흥미로운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차 안의 세상은 폐쇄된 공간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인구로서의 인간에겐 태어날 때부터 이미 모든 인생경로가 정해져 있고, '외부'세계와의 어떠한 종류의 교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차 안은 철저한 계서제로 조직된 사회이자, 완전한 자급자족의 사회이며, 또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시장'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다.

왠지 1989년의 세계가 떠오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내렸다. 바야흐로 유럽통합의 이상은 단지 시간문제였으며, '세계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어떠한 대화도 가능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유령은 마침내 패배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독재 역시 구시대의 유물 마냥 여겨질 따름이었다.

그리고 25년. 누군가는 차디찬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기차 안의 과거를 그리워한다. '자유'를 가로막았던 차디찬 기차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을 때의 열기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자유란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어떻게 보더라도 "설국열차"는 찝찝한 여운을 남긴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괴물"에서도, "마더"에서도 느꼈던 기분.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아무런 확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