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워 보이지만, 3천 여년이 훌쩍 넘는 예루살렘을 담아내기는 영 부족하기만 하다. 구약시대부터 비잔틴과 이슬람, 십자군을 거쳐, 제국들의 충돌과 6일 전쟁에 이르기까지, 가히 고유명사의 폭격을 어지로이 헤매다 보면 어느 새엔가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천상의 왕국. 하지만 예루살렘은 천국이 아니었다. 척박한 환경에 자리잡은 조그만 도시. 바다와 거리가 멀어 교역의 중심이 될 수도 없었고, 별달리 장엄하다거나 위대하다고 부를만한 특색을 갖추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세계의 숱한 도시들 중의 하나일 뿐인 예루살렘은, 그러나, 너무나 성스러워서 성스러울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성전은 신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으며, 새로운 정복자들을 맞을 때마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무너져내렸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꿈꾸며 드나들었고, 이 작은 도시는 그럴 때마다 점점 더 성스러워지고 또 황폐해져갔다.

한 권의 책으로 그 긴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예루살렘 전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겨우 이 정도 뿐이다. 예루살렘의 운명을 결정했던 이들이 있었고, 파괴되고 재건되길 반복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도 예루살렘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예루살렘은 삶보다는 죽음으로 기억되는 장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