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날이 느끼는 기억력의 감퇴. 보고 바로바로 쓰지 않으면 잊어버림.
불과 며칠만에 여전히 정리해놓지 않은 영화들이 생각남.


1. "치코와 리타"

빌보 발데스의 음악이 단연 압권. 스토리는... 솔직히 좀 신파적. 약간 구식이기도. 상당히 호흡이 느린 편이라 가끔 딴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장점.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어설픈 영화(꼭 "베를린"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님)보다야 나은 듯.

영화 자체도 성공보다는 마음의 자유를 달라는 내용이고, 느긋하게 쉬면서, 혹은 책장을 넘기며, 친구나 연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즐길 수 있음. 고로 극장보다는 파티나 바에 더욱 어울릴 법.


2. "엑스맨" 1편, 2편, 퍼스트 클래스

"아이언맨"의 시간낭비 덕에 "엑스맨" 시리즈를 찾게 됨. 마블이 마블이었을 때, 그 때가 궁금해졌음. ("스파이더맨"과 이안의 "헐크"에도 이제서야 관심이...) 물론 퍼스트 클래스만 해도 더 이상 마블은 마블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돈에 눈이 먼 디즈니도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기로 한 듯. 마지막 편의 아쉬움에도 "배트맨"하면 역시 놀란을 빼놓을 수 없듯이, 브라이언 싱어가 없는 "엑스맨"도 상상하기는 어려운 듯.

요즘의 영화선택 기준. 모든 사람이 최악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건 별로일 거야. 나머지는 보고 판단.


3.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어처구니 없게도 "엑스맨"이 남긴 여파, 제니퍼 로렌스 덕분에 찾아보게 됨.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예약) 너무 단순하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 삶은 나를 미치게 한다. 나와 비슷하게 미친 인간을 만나면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고 혼자서만 미쳐가기 때문이야. 뭐 그런?

"잇츠 퍼니 스토리", "초(민망한)능력자들", "문라이즈 킹덤", 넓게는 "빅뱅이론"까지 등으로 보아, 앞으로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이어질 듯. 어쨌든 세상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미치게만 하니까. 아참, 적절한 순간에 적절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대니 엘프만의 음악도 대단히 훌륭.


4. "쥬라기 공원" 1, 2편.

갑자기 생각남. 자꾸 옛날 영화들이 생각나는 걸로 보아 늙어가는 게 틀림없음. 괜히 만들었다고 투덜댔으면서도 여전히 미련을 놓지 못하는 스필버그도 늙어가는 게 틀림없음. 아무튼 1편은 다시 보니 오히려 더 괜찮은 영화였던 듯.

"로 앤 오더 SVU"의 닥터 웡의 풋풋한 모습. 역시 미드의 폐해. 다만 네드리를 나쁘게만 그려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음. 그는 불쌍하게 착취당하는 피고용인일 뿐! 리처드 아텐버로우는 역시나 감독보다는 배우가 더욱 잘 어울림.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연기력으로도 돈많은 늙은이의 재수없는 취미생활을 더없이 잘 그려냄.

"잃어버린 세계"는 온통 구멍투성이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억지로 밀어넣은 게 분명해보이는 그 마지막 클라이맥스만 없었더라도... "엑스맨"과 같은 이유로 3편은 패스.


5. "부르조아의 은밀한 유혹"

단순히 사람이 걸어가는 광경 그 자체만으로 압도적. 궁핍함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듯.


이상하지만 오늘의 결론. 분노와 평정심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라, 욕망과 평정심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으면 더욱 좋고. 공포와 평정심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