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검색을 하다 재미있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트뤼포 버전으로 말하면 '400대는 맞아야 어른이 된다'가 될 것이다.
출처 : 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 알리스 (트위터) 인용에서 재인용

아이들은 400번을 맞아야 어른이 된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이 프랑스의 속담을 정말이지 싫어했고, 그래서 자전적인 영화에다 "400번의 구타"라는 제목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영화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흑백의 화면은 둘째치고, 속도감이라든지 음악이든 무엇이든 부족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화끈한 액션이라든지, 눈물을 짜내는 안타까움, 그런 것조차 하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래에 유행했던 극사실주의 영화처럼 마치 영화를 보는 건지 절망을 보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압도적인 느낌도 역시 주지 않는다.

하지만 "400번의 구타"는 현재에도, 아니 오히려 현재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듯 싶다. 그는 소위 문제아였다. 도저히 구제불능으로, 선생님에게도,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그를 포기한 건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었지, 결코 그 자신은 아니었다.

언제 어른이 될래. 개인적으로 그 오만한 말을 듣거나 하면서 느꼈던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너 자신을 숨기고 자기보존욕구를 가져라, 더 나쁘게는, 너 자신 포함해 누구라도 속일 수 있을 만큼의 자기보전욕구를 가져라, 그 외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는 문제아라고, 혹은 좀 더 넓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은 도대체 얼마나 정당한건지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