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본다. 섯부른 판단 없는 관찰자로써, 프랑스대혁명 전후의 스페인을 끈기있게 바라본다. 밀로스 포만은 고야의 삶이나 예술세계를 보여주려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대신 고야의 눈이 무엇을 보았을까에 모든 주의를 기울인다. 이 영화는 본다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주의깊은 관찰자로써의 예술가. 감독이 고야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시선은 상당히 차가운 편이다. 어떠한 비극이나 극적인 절망은 단순한 양념에 불과하다. 종교의 폭력과 이성의 폭력 사이에서, 권위의 허망함과 혁명의 허망함 사이에서, 해방을 부르짖던 사람들은 이내 점령자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해방자로 변신한 점령자는 다시금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아름답던 처녀는 세상의 굴레에서 살아남는 동안 추악한 노파로 자라나고, 귀여운 아기는 또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며 경박한 웃음을 흘리는 창부가 된다. 그리고 절망이 뒤섞인 세상의 모습은 어느샌가 희극으로 뒤바껴있다. 단순히 삶을 포기했을 뿐인 사자를 우스꽝스런 순교자로 만들어내며.

어쩌면 이 영화에서 "고야의 유령"은 밀로스 포만 자신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절망을 고발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그에게선 무력감이 흘러나온다. 유명한 화가로써 살아가는 고야의 모습을 통해 헐리우드라는 이름의 궁정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작품을 하며 살아왔던 그 스스로를 조롱하는 게 아닐까하는 인상마저 준다. 고야는 비록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살았던 당시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