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이 작품의 엔딩크리딧이 올라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었다. 스테판 닐슨의 서정적이면서도 장중한 음악과는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중경삼림"과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등에서 삽입되며 감돌았던 비슷한 우울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스웨덴에서의 가난한 삶에 지친 펠레와 그의 아버지는 새로운 삶에 대한 부푼 꿈을 가진 채 덴마크로 향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일자리는 좀처럼 찾아지지가 않고 첫 출발부터 쉽지가 않다. 여전히 살아가기 위한 적응으로 체념을 배워야만 하고, 더구나 이민자라는 이유로 무시받고 따돌림 당하는 것도 감내해야만 한다. 무엇 하나 좋은 것 없이 점점 더 불행해져만 가는 펠레는 새로운 희망, 아메리카를 꿈꾸기 시작한다.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기름진 새 땅에서. 캘리포니아에서. 거기서는 과일이 자란다니까. 다시 시작할 거야. - "분노의 포도 1", '9장',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민음사, p. 183

시골마을에서 도시로, 다른 나라로, 아메리카로, 캘리포니아로, 그리고... 역사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중요했던 때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정복자 펠레"를 보며 문득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서구의 전성기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희망고문의 시대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르미날" 등의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는, 국가의 영광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삶의 비참함 속에서 사람들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메리카는 그 자체로 기회의 땅이었고 이상향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 아메리카에서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대공황이 시작된다는 사실은 결연히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펠레의 뒷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아버지가 스웨덴을 떠나 덴마크로 향했듯, 그가 덴마크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듯, 그의 아들 역시 또 다시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나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꿈을 쫓아 거침없이 떠날 수 있는 펠레가 부럽기도 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란 점점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모처럼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다시금 들어본다. '겨울날에 캘리포니아를 꿈꾸네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라는 후렴구가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