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캠피온, “내 책상 위의 천사”
그녀는 세상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하게 내성적이었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대단한 피해를 준 적도 없었다. 그녀는 글을 쓰는 게 좋았을 뿐이고,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만 여겼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가 걱정스러운 충고를 남기려 한다. 그녀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도, 그녀의 선생님이나, 또 남몰래 연심을 품었던 대학의 교수님도,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남자나 혹은 여관의 관리인도, 직장을 갖기 위한 면접에서도, 그녀의 심하게 내성적인 성격을 기어이 바꿔놓기 위해, 그녀가 글 쓰는 일을 포기하고 '진짜'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그녀를 세상 안에서 살아가게끔 하기 위해, 모두가 호의적인 마음으로 기꺼이 그녀에게 충고를 하려고만 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호의는 곧 그녀의 불행이었다.
세상이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볼수록, 그녀도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꿔놓기 위한 치료를 위해 8년의 세월을 받아들였고, 또 다시 그 치료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시 7년의 방랑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녀가, 그리고 또 세상이 그 긴 세월을 통해 얻은 결론은 결국 그녀는 심하게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글쓰는 걸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으며,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12권의 소설, 3권의 단편집, 1권의 동화, 2권의 시집, 4권의 자서전,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문집과 또 그에 따르는 수많은 영예를 남긴 그녀, 재닛 프레임. 세상은 끝끝내 그녀를 불행한 여성으로 바라보고 싶어했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행복에 더없이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4 Comments
ㅠㅠ
답글삭제이 영화 봐야겠어요!
좋은 영화지요,
답글삭제조그만 위로도 준답니다!
이걸 보고 느낀게 많았죠.
답글삭제우리 세상에서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렇지요?
문학적이라는 것도 슬프지요. 비주류와 비주류의 만남은 언제나 씁쓸함의 풍미를 더해오죠.
문학적이면서 내향적이다. 슬픈게 슬픈 것을 만나면 당연히 더 슬퍼지죠. 그렇기때문에 애잔한 영화 아니겠습니까?
패닉의 왼손잡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 그런걸 느껴요.
조금 다르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한다는 이유로 결국 상처를 형성하죠.
그 상처는 딱지도 형성되지 않아 결국 자국을 남기고 흉터가 되죠.
하지만 여기서 흉터는 결국 문신이 되 버리죠.
문신도 미(美)라는 가치를 위해서 몸에 상처를 새기는 거니까요.
참 웃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생각을 조금 달리했더니 흉터가 문신이 되버리는거죠. 흉한 것이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되버리는 거죠.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해요.
참 좋은 작품이죠 :)
답글삭제무엇이든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단정짓는 건 위험한 거겠죠.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끝난 후에야 비로소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좀 느긋할 필요가 있어요. 뭐든 무조건 나쁘고 무조건 좋은 건 없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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