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오래 전에 발매되었지만,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는 현재에도 신선한 발상으로 다가오는 게임이다. 주인공부터 대개의 판타지 작품에서 마땅히 사라져야하는 악으로 묘사되곤 하는 언데드이다.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독설가 해골, 타락하여 온몸이 불타는 마법사, 지식을 비웃는 순결한 서큐버스 등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료들 역시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의 여행은 게임을 하고 있는건지 책을 읽고 있는건지 착각을 줄 만큼의 방대한 텍스트 아래,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가 있나What can change the nature of a man?"라는 단 하나의 질문만을 집요할 정도로 묻고 또 묻는다.

이 게임을 하기 전에는 인간의 본성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는 주인공과 동료,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증오, 권력, 탐욕, 배신, 죽음, 나이, 고통, 성공 등을 비롯, 특히나 후회와 믿음이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며 다양한 해답을 제시해놓는다. 게임을 끝마친 후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가 있나"라는 질문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개인적인 결론은 여전히 인간의 본성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였다. 하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생각에서 '본성'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다른 의미가 되었다.

본성이라는 게 무엇일까. 아니 더 정확히는 인간에게 본성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단초는 주인공이 기억을 잃었다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만약 주인공이 이전의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그가 과거에 행한 일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인간을 어떻게 정의내리든, 한 개인의 성향이란 결국 그가 지닌 기억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이 기억을 잃어버리고 시작되는 바이오웨어의 또 다른 게임 "스타워즈 : 구공화국의 기사단"에서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그건 인간이 지닌 기억을 형이상학적 표현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성향이란 과거에 그가 한 선택들, 겪은 경험들, 보고 들은 지식들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기억들은 인간의 선택에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게 한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인간이 기억의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어떠한 개인들은 삶의 과정 속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본성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이는 단어의 의미와 문장 사이에 모순이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기존의 기억과 새로운 경험 사이에서 겪는 심각한 갈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길게 이야기되었지만 짧게 요약하면, 인간의 본성이라는 개념보다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한 개인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도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D&D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는 정말 매력적인 게임이다. 특히 선과 악, 질서와 무질서를 분명하게 구분짓고 있기에, 질서라고 해서 꼭 선이 아니고, 무질서 역시 곧 악과 동의어가 아님이 게임룰 자체에 담겨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에서는 선과 악의 대립보다도 질서와 무질서 간의 대립을 보다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스타워즈 : 구공화국의 기사단" 시리즈 같은 경우는 선으로 대변되는 제다이와 악으로 대변되는 시스가 모두 질서적인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가 던지는 질문은 다소 아쉬운 느낌을 숨길 수가 없다. "무엇이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가 있나"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변하게 하는가" 내지는 "무엇이 인간을 결정짓는가"라는 게 보다 더 좋은 질문이 아니었을까. 쓰고 보니 너무 단어 하나를 가지고 따지고 드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매직워드처럼 단어 하나가 사람의 생각에 미리 전제를 깔아놓는 위험성을 지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