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작품이 될 뻔 하다가 만 영화. 예상과는 달리 스토리의 짜임새가 제법 탄탄한 편이라 놀랐다. 인물의 낭비가 거의 없다는 점은 단연 돋보이는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처럼 잘 짜여진 스토리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게 허망할 따름이다.

"후궁: 제왕의 첩"의 주제는, 조여정의 나신연기로만 관심을 끌었던 광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자식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모성애의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했다.

왕에 즉위한 성원대군(김동욱 분)과 중전(박민정 분)의 첫 번째 정사씬은 (약간 어디에선가 본 것 같긴 하지만)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압도력을 보여준다. 내시로 분한 박철민과 이경영도 특유의 캐릭터들이 맞물리며 제법 좋은 몇몇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몇몇 장면들이 어머니와 아들, 또 다른 어머니와 아들로 이어지는 핵심모티브를 잘 이끌어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하지만 딱 거기까지. 물론 상업영화이기에 흥행을 위해 많은 볼거리를 우겨넣으려 한 것은 이해해주어야겠지만, 단순히 노출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야라며 항변하는 것만 같은 감독의 연출은 시간이 지날수록 똑같은 장면의 반복으로 그저 지루할 따름이다.

조여정의 노출은 (영화의 홍보를 위해) 굳이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억지스러움이 느껴지면서도, 정작 영화가 끝난 후에는 그녀의 노출을 위해 그녀의 역할을 희생한 것 같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매우 매력적이고 좋은 배우인 박철민의 연기는 "화려한 휴가"에서도 감지되었던 위험, 지나치게 재미를 주려고 하면 영화 자체가 위험해진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 덕분에 어쩌면 소름끼칠 수도 있었던 대비 역의 박지영의 열연이 그저 광고가십 속에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