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med Alsoudani, Untitle

아메드 알수다니 Ahmed Alsoudani : 페이스북 홈페이지

1975년 이라크 바그바드 출신의 화가로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슈베르트의 사중주를 들었어요. 어둠속에서 그 훌륭한 음악을 듣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말로 할 수 없어요. 사람이 사흘간 굶었을 때, 사람의 몸이 갈가리 찢길 때, 그리고 …"
- "죽음과 소녀", '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명환, 김엘리사 옮김, 창비, p.226


아메드 알수다니의 작업은 분해이다. 그것도 아주 흉하고 역겨운 인체의 분해이다. 그리고는 형형색색의 고운 색채로 다시 이어붙인다. 원래의 자리나 기능 같은 건 전혀 중요한게 아니다. 일단 완전히 분해되어 떨어져나온 인체의 일부에 있어서 특별한 기술을 지닌 의사가 필요할리가 없다. 대신 그는 화폭 안에서 인체로 디자인을 한다. 아주 흉물스럽게, 하지만 최대한 아름다운 색조로.

그의 재료들은 전쟁에서 온다. 1990년의 걸프전과 그에 이은 수많은 폭탄 테러와 일상적인 폭격, 관타나모로 상징되는 감금과 고문, 그리고 2003년의 이라크전쟁까지, 이라크와 뉴욕을 오가며 살아온 그에게 재료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조각조각 부서진 잔해들은 채 이어붙이기도 전에 금새 부패되어 버린다. 무언가 고정시킬 것이 필요하다. 박제는 좋은 선택이다. 그렇지만 원시성이나 야만성이 드러나는 사냥의 방식을 채택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건 우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는 박제된 미술사를 빌려오기로 결심한다. 게오르그 그로스나 고야, 피카소, 베이컨 등 서구미술사에서는 역시나 훌륭한 재료가 많다. 십자군과 대항해시대, 처절한 식민지경쟁,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우월자의 논리 등 이 안에서도 아주 많은 잔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다 드러나는 휴머니즘과 반성은 고상함을 더해주는 더욱 탁월한 소재가 된다. 그의 화폭에서 세계사의 고상함은 절대불가결한 필수성을 지닌다. 여전히 온전한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가도록 허락받지 못하는 수많은 나라들의 흉물스러움과 좋은 대비가 될 수 있도록.

먼지와 폭연이 흩날리는 바그다드, 여기저기 하수관이 터져 물바다가 된 도시 위를 굴러다니는 출처불명의 잔해들을 모아 그는 목탄폭탄을 만들어낸다.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양이라고 부르는 서구적 질서의 한가운데에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조심스레 모아놓은 재료들로만은 충분하지 않다. 우아한 태도는 더욱 그럴 듯한 장면을 만들어준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린 그림을 배경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 놓여진 곳에서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흘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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