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 2011.08.20 ~ 2011.10.23

작품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작품계획을 기록해온 드로잉으로 더욱 유명한 작가, 2004년 불현듯 세상을 떠난 박이소 작가는 그야말로 가득히 쌓인 작가노트가 먼저 생각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고치고 수정하고, 또 고치고 수정하길 반복하는 꼼꼼한 고민의 흔적들. 이번 아트선재에서 열리는 "개념의 여정"전에서 베니스를 비롯한 각종 비엔날레를 수놓은 그의 결과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그가 평생을 고민해온 작업의 궤적이 남김없이 드러나보인다.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서며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던, 어쩌면 작품 그 자체보다도 더욱 더 소중할지도 모르는 고민의 흔적들을 말이다.


Bahc Yiso, We are Happy, 2004, Billboard, Dimensions vary, Courtesy of the estate of the artist
© Estate of Bahc Yiso, Reproduced by permission of Yiso Sarangbang, Seoul.


질문들. 그는 물었다. 정교하게 필사한 책을 들어보이며 이것은 왜 예술이 될 수 없는지를, '잡초도 자란다'고 외치며 사군자로 요약되는 동양화의 고고함 속에서는 왜 잡초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는지를,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Exotic-Minority-Oriental, 1990"과 같은 '우스운 음성'으로 이것과 저것을 수식하는 단어가 도대체 어떠한 뜻인지를,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0선World's top ten tallest structures in 2010, 2003"과 같은 '어설픈 건물'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요We are happy, 2004"라고 외치는 선전문구 뒤의 표정이 진정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그는 묻고 또 물었다.

그래서 이 전시는 감히 '예습이 필요한 전시'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한다"는 작가의 줄기찬 고민을 이해할 수 없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어찌보면 허접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작업들을 알지 못한다면, 전시장을 빼곡히 메운 조금씩 고쳐지며 정교화되어가는 드로잉의 연속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당혹감만을 안겨다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그의 유작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씁쓸함에 잠겼던 기억이 있다면 "개념의 여정"전은 아무도 모르는 보물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소중한 전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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