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비명을 내며 검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침묵한다. 나는 기다림이 고통스럽다. (With a shriek birds flee across the black sky, people are silent, my blood aches from waiting.) - 메사 셀리모비치(Mesa Selimovic; 구 유고연방의 작가) / 영화 중에서


가뭄으로 잔뜩 메말라붙은 마음은 비를 바란다. 쩍쩍 갈라진 땅은 답답한 공기로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곧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먹구름 아래로 아이들이 총알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둥근 불꽃 사이로 튕겨나오는 총알들.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의 접경에 위치한 해안마을에선 증오가 시간을 멈추어세운다.

세 개의 사랑, 그리고 세 개의 비극. <언어>, <얼굴>, <사진>의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비포 더 레인 (Before the Rain, 1994)>에선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나직한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회교도 소녀에게 연민을 품은 기독교 성직자, 동료 사진작가와 사랑에 빠져버린 기혼의 여성편집자, 지켜만 보는 일에 지쳐 마케도니아로 귀향을 결심한 사진작가 등 주인공들은 양립할 수 없는 선택의 사이에서 침묵하며 고통받는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성직자는 성경 안의 사랑과 눈 앞에 있는 사랑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고, 여성편집자는 마돈나의 사진과 내전사진 중에서, 사진작가는 방관자로써의 사진기와 직접적인 행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쪽저쪽을 오가며 화해를 청해봐도 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엔 쉽사리 비가 내리지 않는다. '평화는 예외, 법칙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진작가의 말처럼, 갈등은 어디에서나 이해보다는 선택을 강요할 뿐이다. 마케도니아에서도, 루마니아에서도, 벨파스트에서도, 앙골라에서도, 보스니아에서도, 심지어는 런던 한복판의 레스토랑에서조차도 평화는 그저 예외에 지나지 않는다.

둥글지 않은 원과 멈추지 않는 시간. 문학적인 영상으로 이어지는 <비포 더 레인>은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간의 분쟁을 통해 세상이 지닌 보편적인 갈등의 굴레를 이야기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비극들. 마치 구원을 바라듯 아무리 먹구름을 올려다보아도, 그리고 마침내 내리는 무거운 빗줄기조차도, 건조한 땅의 갈증을 쉽사리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