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철, 평화시장(만화 "태일이" 4권 표지), 종이에 펜, 디지털 채색, 42×29.7cm, 2009
출처 : http://blog.naver.com/homix/

일시 : 2010.09.15~2010.10.31
장소 : MUSEUM 만화규장각 (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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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의 한 골목, 층층으로 잔뜩 쌓아올린 쟁반을 머리에 인 아주머니가 배달에 나선다. 한쪽에서는 미싱이 부지런하게 실을 토해내고, 허름한 골목길의 구석에선 노상의 의자에 앉은 한 남매가 할머니가 퍼주는 국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무언가 책을 들고 설명에 열중하는 한 청년이 있다. 한 때는 지금이었던 이야기들. 만화가 최호철은 미처 마주할 틈도 없었던 기억들을 담아간다.

좋았건 나빴건 지나간 것들은 왠지 모를 아련함을 준다. 사람이건, 시간이건, 풍경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젊은이들이 아쉽고, 어느샌가 새로운 건물들로 빼곡히 변해버린 도시의 풍경도 조금쯤은 섭섭하다.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지난 시간들이었기에 어쩌면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문득 옛풍경들을 바라보면 낯선 기분이 든다. 청계천의 고가도로 밑에서 복작이던 풍경은 이제 없다. 판자집과 한옥들도 점점 사라져간다. 골목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던 계단을 오르내리던 기억도 과거의 한 때일 뿐이다.

그래서 최호철 작가의 작업들은 반가움을 준다. 인간은 기억으로 사는 존재이기에 기억의 한 켠은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나게 난다. 아무리 땅을 파헤치고 흔적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써도 사람들의 기억만큼은 지워낼 수가 없다. 현재는 항상 과거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담담한 현재의 기록은 또 언젠간 지난 일로 남겨질 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도 같다. 동네를 걷는 한 사람의 발자국은 그만큼의 기억의 흔적을 남긴다. 최호철 작가는 그 발자국의 무게들을 종이 위에 새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