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지만 치열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흔한 말이지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은 항상 나 자신이다. 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해서 연극을 내뜻대로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혼자서 살 수는 없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내 연극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듯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연극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때때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불행이나, 예기치 않은 행운이 연극을 좌우할 때도 있다. 그래서 고독하다.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소외를 느낀다.


<시네도키, 뉴욕>이 묘사하는 한 남자의 인생에선 단맛이 난다. 그건 마치 김빠진 콜라에서 맛볼 수 있는 건조함과도 같다.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끈질기게 따라다는 질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연극연출가 케이든(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노력은 하나의 악의적인 농담, 혹은 어리석은 꿈처럼 다가온다. 새로운 관계는 과거의 미련에 발목을 잡히고,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거대한 연극은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방향을 잃고 이름을 바꾼다.


하지만 케이든의 삶은 극중에서 자신이 연출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냉장고와 집으로 인생을 소진하고, 마지막엔 자식을 위해 어리석인 희생을 자처하는 윌리 로만과는 달리, 케이든은 비록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주인공다운 모습을 보이진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갈망하고 포기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계는 의지 앞에서 멈추어선다. 나의 의지가 인형극처럼 다른 이의 연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유머이자 부조리가 된다.

<시네도키, 뉴욕>의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핏빛의 오줌이 나오고, 아내가 떠나고, 불타오르는 집을 계약하고, 대변의 색깔이 바뀌고, 귀엽던 딸이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배우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그건 고작 책장 안의 대본에 불과하다. 나는 여전히 어정쩡한 희망과 회한에 몸을 기대며 괜찮은 척 살아갈 것이고, 언젠간 끝없이 기다림을 강요하던 무대도 막을 내릴 것이다. 그 때까지 할 일이란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한다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