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위키피디아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간에 주어진 위치와 하는 일에 따라 인간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독재자의 힘을 얻게 되면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아무런 힘이 없는 처지가 되면 무력감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 있었다.

1971년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 박사는 교도소의 역할극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변화되어갈 수 있는지를 관찰하고자 했다. '스탠포드 감옥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라고 불린 이 14일에 걸친 프로젝트를 위해 그가 선발한, 75명의 건장한 남성들에게 주어진 과제란 오직 하나 뿐이었다. 진짜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권력의 힘을 지닌 간수역할자들은 필립 짐바르도 박사가 원했던 그 이상으로 자신의 역할에 빠져들어갔다. 그들은 똑같은 피실험자로 참여한 죄수역할자들을 점차 가학적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상황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던 한 죄수역할자를 '독방(solitary confinement)'이라 이름붙인 밀실 안에 가둬버리기에 이른다. 걷잡을 수 없이 극으로 치닫던 상황은 고작 6일만에, 처음부터 실험의 윤리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박사의 제자 크리스티나 매슬라크(Christina Maslach)에 의해 실험실이 폐쇄되며 막을 내리게 된다.

영화 <엑스페리먼트>가 재현하는 스탠포드 감옥실험의 현장은 충격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건 인간이 광기에 물들어가는 공포의 현장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간수역할자들은 죄수역할자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처벌의 강도를 점점 높여만 간다. 폭력을 금지한다는 실험의 조건도 한 번 휘둘러진 폭력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간수역할자들은 마치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한편으로 죄수역할자들은 자신의 역할로 인해 점차 증대되어가는 폭력에도 상상 이상으로 순응하며 받아들인다. 손발이 묶이고 아무리 모욕적인 처벌을 당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점차 깊은 체념으로 이끌어간다. 공포에 젖은 무기력한 눈빛에서는 전과 같은 쾌활함이나 자신감 따윈 완전히 사라져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옷과 인간성, 합리화되는 행동들. <엑스페리먼트>의 실험에서 간수복과 죄수복은 한 인간을 결정짓는 정체성과도 같다. '나는 무엇무엇이기에' 불합리한 행동은 어렵지 않게 납득되고 받아들여진다. 언젠가 <CSI>에서 보았던 '인간은 섹스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합리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라고 했던 대사가 머릿 속에 떠오른다. <엑스페리먼트>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이러한 합리화가 너무나도 인간적인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