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생각 하나가 인간을 결정짓는다.

설정이 무척 흥미롭다. 인간의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을 훔치는 도둑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그는 어느 날 유력한 사업가 사이토(와타나베 켄; Ken Watanabe)에게서 한 가지 제안을 듣는다. 만약 생각을 훔칠 수 있다면, 반대로 생각을 넣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 거절하기 힘든 조건에 코브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치밀한 계획을 준비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생각을 훔치기 위해 꿈 속을 드나든다. 그가 <인셉션>을 통해 만들어낸 꿈의 모습은 <메멘토, 2000>나 <인썸니아, 2002>를 어렵지 않게 연상시킨다. 표층과 심층 사이, 욕망과 양심이 혼재되어,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공간. <배트맨 비긴즈, 2005>에서도 잠깐 엿보인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에셔의 그래픽작업들이 배여든다. 놀란의 꿈은 장자와 에셔가 만난 장소이다. 그리고 이 장소의 중심엔 엘렌 페이지(Ellen Page)가 있다.

꿈의 건축, 상상력과 기억 간의 갈등. 엘렌 페이지가 분한 아리아드네는 꿈의 큰 틀을 짜고 구성하는 건축가이다. 그리고 또한 처음으로 꿈 속을 여행해보는 신출내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영화 내내 잠시도 주인공 코브의 곁을 떠날 줄을 모른다. 그녀는 질문하고, 그는 답한다. 그가 답하면, 그녀는 다시금 질문한다. 낯선 설정 때문인지, 크리스토러 놀란은 이러한 문답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화를 설명해주고 안내해준다. 하지만 그만큼 관객들도 따라가야 하기에 다소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말로써 꾸준히 이야기되고 설명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영화의 주요갈등이 너무 일찌감치 모든 패를 드러내보인다.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은 예측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심도마저 예전처럼 깊어보이지 않는다. 끝까지 패를 숨기고 계속해서 깊숙한 내면으로 보는 이를 몰아세우던 크리스토퍼 놀란 특유의 긴장감을 기대한다면, 이 부분은 상당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무언가를 잡으면 끝까지 파고들어가는 그의 스타일만큼은 <인셉션>에서도 주효한 관전포인트이다. 꿈 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 속에서 꿈을 꾸는 일련의 과정에선 꽤나 긴 런닝타임이 무색할 정도로 상당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또한 꿈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네트워크화한다는 발상에선 현재의 시간에 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중간평가도 엿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최고의 영화로 꼽기엔 다소 아쉽지만, 놓칠 수 없는, 그리고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지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