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습(Joseub), 물고문(Water Torture), Digital Light-Jet Print, 2005
출처 : http://www.jose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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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충남 온양 출생의 예술가.

흔한 말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한다. 누구든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를 낳은 부모가 있고, 그 부모들 역시 그들을 낳은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가 흘러가는 강물에 곧잘 비유되곤 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은 항상 과거의 시간에 영향을 받고, 과거의 시간 역시 그보다 더 앞선 과거의 시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울하게 기억되기에, 희뿌연 먼지로 덮어놓은 과거 한국의 시간들. 다소 악의적인 키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조습은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시간 안에 재구성하며 한국사회의 망각을 조롱하고 비웃는다.

망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사망을 오마쥬한 <조습이를 살려내라(Do bring Seub back), 2002>, 똑같은 군복을 입고 똑같은 포즈를 한 청년과 노인을 병치한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I hate red peanut), 1999>과 <Old Boy, 2004>에서 과거는 사라지기는 커녕 생생한 현재가 된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열창하는 <5.16, 2005> 속의 각진 군인들, 심한 상처를 입고 누워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랑을 속삭이는 <눈 먼 골목(Blind Alley), 2006> 속의 연인들, 그리고 한창 고문이 진행 중인 목욕탕 저편으로 때를 밀고 있는 <물고문(Water Torture), 2005>의 사람들이 연출하는 일련의 부조리극에선 시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음'과 '고의적으로 보지 않음'의 경계마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웃음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웃겨서 웃는 웃음과 웃기지도 않아서 웃는 웃음. 언뜻 보면 정말 '명랑'한 조습의 사진들은 처음에 터지는 웃음 뒤로 상당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인간이 역사를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항상 과오를 반복하는 역사, 그래도 체념할 수 없는 자들의 분노. 웃음은 분노를 달래며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