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12.19 ~ 2010.01.09
장소 : 통의동 보안여관

언젠가는 사라져갈 것들. 소년 때의 환상도, 대학시절 주야장천 이어지던 술자리의 치기도, 혹은 연인에게 속삭이던 달콤한 고백도, 흘러가는 시간에는 저항할 수 없다. 현대사회는 관계맺음에 대해 강박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쿨하게 소비해버린다. 긴장도 없고, 기대도 없다. 하지만 편리하다.


김월식, 낭만에 대하여, Single Channel Video, 00:37:00, 가변설치, 2009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그리워진다는 말도 있듯, 비록 편리할지는 몰라도 늘 새로움으로 둘러쌓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러 피로감을 느낀다. 불편하지만 아련한 즐거움으로 남아있는 기억들. 김월식 작가는 이미 지나간 것들을 추억으로 가득한 낡은 공간에 펼쳐놓는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은은히 흘러나오는 과거의 폐허. 서정주와 김동리 등 옛문인들이 동거동락한 장소는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과 배 나온 중년아저씨들, 그리고 연인들이 품을 서로간의 욕구가 뒤섞이는 야릇한 <낭만적 부락>이 된다. 아예 제목부터 <낭만에 대하여, 2009>로 이름붙은 가변설치물은 세 쌍의 커플이 남긴 하룻밤의 기억들이 차가워지지도 못한 채 미지근한 온도로 어슬렁거리며 벽에 투사된다.


김월식, 후미코 컴퍼니-그녀의 손바닥, Single Channel Video, 00:04:30, 2009


기계적으로 금을 타는 연주자의 음율이 감도는 가운데 투사되는 <후미코 컴퍼니 - 그녀의 손바닥, 2009>에서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말하고 싶어했던 언어를 보다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휴머니즘에 젖어있는 시스템 안의 한 일본여성, 그리고 객으로써 방문했던 작가가 여름날 뜨겁게 맺었던 관계는 기념품처럼 적당한 거리로 남는다. 2층의 <시창작센터-로멘틱커뮤니티, 2009>는 한 화면 안에서 저마다의 사람들이 따로 따로 자신만의 연극을 진행해나가는 <활극도 긴장도 농담도 없는 네러티브, 2008>를 태연스레 재생하며, 쿨하게 소비되어지는 관계를 놀이의 형태로 바꾸어낸다.

김월식 작가의 <낭만적 부락>은 뜨겁지 않다. 차가움을 지쳐버린 사람들이 어설프게 욕구하는 미지근함에 가깝다고나 할까. 과거의 뜨거운 기억은 추억의 몫으로 남겨지고, 적당한 온도로 뱉어진 가습기의 증기처럼 이내 체험된 것 중의 하나로 머무를 뿐이다. 욕실이 뿌려대는 비의 저편에서 춤을 추는 순간의 환상도, 낭만을 생산하는 공장의 눅눅한 긴장감도,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의 기억도, 오래지않아 함께 사그러져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