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결산이라... 사실 별로 좋은 주제는 아니예요. 비가역적 시간이라든지, 시간이 경계를 짓고 있는 건 단지 시계나 달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쯤은 이제 상식이니깐요. 그럼에도 특별한 날들을 꼭 챙겨야만 하죠.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잊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반년 정도 현대미술을 어설프게 소개해드렸으니, 그에 대한 잠깐의 정리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지요. 잡설에 불과하니 기대는 금물이예요.

혹시 예술가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말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작품이 나쁘다, 허접하다, 저게 뭐냐, 내가 해도 그것보단 낫겠다 등의 비난 어린 악평도 물론 가슴 아픈 일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악평은 그래도 나은 편이예요. 어찌되었든 비평이 있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는 된답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슬프다고 하던가요. 하지만 무플보다도 더 나쁜 게 있으니, 그걸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지요. 가족, 친구는 물론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예술가 아니면 놈팽이로 구분지으니 이처럼 괴로운 게 없어요. 그렇게 사회는 정체성의 논의를 거부해왔죠. 2009년 미술계의 최대화두. 바로 "정체성"이랍니다.

며칠 전 세계화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두바이의 거품이 터졌었다지요?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다드. 요즘 참 많이 들었던 단어들이었던 거 같아요. 물론 한편에선 자본의 한계를 끊임없이 지적해왔다지만, 너나 가릴 것 없는 불황과 연이은 경제적 충격들만큼의 효과는 없었던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문화가 한동안 위축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거대자본에 숨어있던 작은 생각들이 불황을 틈타 삐져나오고 있답니다. 최근 보이는 헐리우드의 위기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지요.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 빈약한 상상력은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여요. 작년부터 오로지 자기정체성을 찾기 위한 이스라엘 영화의 시도가 빛을 보더니, 불황 속에서도 캐나다, 독일 등의 독립영화들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네요.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몇 해 전만 해도 공공미술은 별 관심을 얻지 못했더랬죠. 하지만 브라질과 일본, 독일 등이 선두에 서며 논의는 점점 활발해지고 있네요. 일상의 예술, 도시 속의 예술, 공공미술은 어쩌면 하나의 징후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나 다름없으니깐요. 아직도 예술하면 으레 뉴욕과 파리를 떠올리시겠지만, 적어도 2009년의 예술은 뉴욕과 파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답니다. 베를린과 베이징, 도쿄, 리오 데 자네이루, 이스탄불, 비엔나, 취리히, 오슬로 등 국지적 광역권의 새로운 도전이 만만치 않아보이는군요. 파리와 뉴욕을 이으며 컬렉터들과 만나던 홍콩의 위치도 약간은 불안해보이네요. 정체성은 시장을 다변화해가고 있거든요. 거대자본가들이 싫어하는 것들은 많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지역화이죠. 관심이 분산될수록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마련이죠. 공격성 또한 어디서 튀어나오게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지구요.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죠. 회화에선 중국이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하더니, 또 이어서 사진에서 스웨덴의 여성작가들이 신데렐라처럼 등장하네요. 파리에선 공격적인 범이슬람권 설치미술가들이 중심에 안착했고, 또 캐나다 등 영미권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은 뉴욕을 잠식해가고 있네요. 런던-오슬로-베를린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에선 새로운 가능성들이 폭탄처럼 떨어지며 컬렉터들을 압박해가는군요. 얼마 전에 정연두 작가가 MoMA에 입성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듯, 국내작가들의 선전도 만만치 않답니다. 다만 국내에선 좀 관심이 없어보이네요.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서울 서교동이나 부산, 대구, 전주, 대전 등 여러 지방도시들에서 공세가 활발해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약간 겉돌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네요.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던가요? 굳이 한국적일 필요까진 없어요. 그냥 솔직해지면 되는거죠. 현재의 자신을 숨긴 채 외면만 한다면, 한계는 점점 더 분명히 드러날 거예요.

어느덧 새천년도 10년이 지났네요. 2000년이 될 때만 해도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이리 대박을 칠 거라고 기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거 같아요. 다양성과 민족주의의 만남,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럴리스트들의 만남, 비틀즈의 "Let it be"는 휴머니즘과 세계화를 변주하고 있답니다. 신계몽주의는 정치윤리부터 시작되는군요. 언제까지 냉소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자아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걸 보니, 역시 역사는 반복이예요.

말도 안 되는 잡담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아참 상식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로군요! 그냥 교양이라고 해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