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홍, 감옥철인22호, 플라스틱, 오브젝트, 30*30*3.5cm, 2008(좌)
권재홍, 학교철인24호, 플라스틱, 오브젝트, 30*30*3.5cm, 2009(우)
출처 : 네오룩닷컴

일시 : 2009.12.03~2009.12.30
장소 : 카이스 갤러리(청담)

게임의 법칙. 게임은 도처에 있다. 의사는 생명의 게임을 하고, 정치가는 권력의 게임을 하며, 교육자는 미래로 게임을 한다. 게임은 하나의 법칙이고, 제약이고, 틀이다. 흔히 게임하면 떠오르는 PC게임이나 놀이에도 법칙이 있다. 어딘가에 중독된다는 건 어떠한 법칙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단지 알콜중독자는 정신을 잃는 법칙에 중독되고, 워커홀릭은 시스템 속에 중독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일상은 하나의 중독행위이다. 그 중에서 나쁜 것으로 판단되어진 것은 치료사를 필요로 하지만, 좋은 것으로 판단되어진 것은 장려받는다. 그래서 사람은 언어에 중독되고, 공부에 중독되고, 칭찬에 중독되고, 사회에 중독되어 간다. 성공에 도취된 자는 법칙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스템엔 항상 오류와 예외가 있듯이, 아무리 강요되고 제재를 받더라도 변종 또한 어디서나 존재한다. 일상에 지루해하는 사람들. 2009년의 한국사회의 법칙을 프라모델 장난감으로 만든 권재홍 작가는 분명 괴짜이다.

권재홍 작가의 작업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란 단어와 매우 잘 어울린다. 재미있지만 씁쓸한 키치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철인24호>에서 무쇠팔, 무쇠다리를 지닌 로보트는 학사모를 쓴 채 시계와 급훈,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이어지는 단상 등으로 둘러쌓여있다. 교과서를 펼쳐드는 순간 등장하는 <철수와영희>는 술에 취한 듯 붉은 눈을 하고 있고, 학사모를 쓴 <천재소년>은 특정정당의 마크와 함께 약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 잘했어요' 도장과 교과서 혹은 지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군모를 쓴 바비인형의 얼굴에 'Welcome to Guantanamo'의 휘장을 두른 아기인형의 몸을 지닌 <바비솔저>는 아마 냉소의 바다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솔깃할만큼 높은 압축성이 돋보인다. 보드게임처럼 보이는 <Beautiful Korea>는 학원생활과 인터넷중독으로 지쳐가는 청소년들을 위해 강력히 추천해드리고 싶다. 1부터 100까지 마치 등수처럼 이어지는 숫자. 다른 이들이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면 서울대로 들어가게 되고, 주는대로 급식을 먹으면 병마에 시달리게 된다. 신랄하다. 그래서 즐겁다.

2009년의 연말 결산으로 2010년의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권재홍 작가의 전시는 탁월한 선택이 될 듯 하다. 만약 필자가 비엔날레의 조직위원이라면 권재홍 작가를 1순위로 부르고 싶다. 작업물이 뛰어난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중독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어찌되든 진단을 받아야만 한다. 물론 좀 과격하고 질이 낮아보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가장 정확하게 필요한 부분을 건드려가고 있다. 적당하고 이기적인 친절의 법칙.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듣기가 싫다. 모든 이가 만족하는 법칙이란 체념된 법칙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