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유럽은 민족주의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과연 20세기의 세계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의 시대? 1945년, 전쟁에 지친 열강들은 군비축소와 평화유지를 골자로 한 국제연합 UN(United Nations)를 설립한다. 하지만 UN은 열강의 허수아비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20세기 후반에서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의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은 그나마 이슈가 된 것들일 뿐이다. 다니스 타노비치(Danis Tanovic)의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는 철저한 세계의 무관심 속에 치뤄진 그들만의 전쟁, 발칸반도를 찾아간다.




영화는 짙은 안개가 깔린 전장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보스니아의 정찰대원들은 날이 밝을 때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날이 밝자 반겨주는 세르비아 총격에 간신히 살아남은 '치키(브랑코 쥬리치)'와 '세라(필립 소바고빅)'. 세르비아군은 보스니아 정찰대원의 생존을 확인하고자 이제 갓 군대에 입대한 '니노(르네 비토라작)'와 고참상사를 참호로 파견한다. 고참상사는 사망한 보스니아군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세라의 아래에 부비트랩을 설치하지만, 숨어있던 치키에 의해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황량한 전장에 어색하게 남겨진 치키와 니노. 서로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기에 이들은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각종 계략들을 시도하지만, 결국 부비트랩 위에 누워있는 세라의 존재와 전장의 한복판에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험으로 인해 일시적으로나마 적대적인 행동을 그만두기로 합의한다. 서로의 진영에 도움을 청하는 병사들을 발견한 보스니아군과 세르비아군은 난처함에 빠지고, 덕분에 하릴없이 머무르던 마르찬느(조르쥬 시아티디스) 중사의 UN군이 개입하게 된다. 마침 취재차 나와있던 영국의 기자 제인 리빙스턴(카트린 카틀리지)이 이 사건에 호기심을 가지고 전세계로 중계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수선스러워진다.

<노 맨스 랜드>에서 다니스 타노니치는 지독한 냉소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묘사한다.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싸움은 무의미하기 이를데 없고, 자기방어적인 UN의 적당한 인도주의는 무력하다는 말 이외에는 수식할 단어가 없다. 여기에 싸구려 휴머니티로 무장된 미디어는 오직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그럴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도 품지 않는다. 다니스 타노비치의 냉소는 통쾌하지만 '저래도 되는거야?'라는 어이없음을 남겨둔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관한 또 다른 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 2008>가 다소 심각한 어조로 내전이 남긴 후유증을 말하지만, <노 맨스 랜드>는 너무나 가벼운 어조로 아무렇지도 않게 비극을 말하기에 더욱 더 큰 임팩트가 있다. <랑페르(L'Enfer), 2005>에서도 느꼈었지만, 다니스 타노비치는 마치 일상이 늘 그러한데 뭘 또 새삼스럽게 난리냐는 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에는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이 또 그러하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진 일상생활이었던 것이다. 삶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전쟁은 어디서나 끊이지를 않으니, 그의 어조를 부정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