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혁종, 마지막 잎새, 화폐, 촛농, 주은 철사와 열쇠고리, 제작후 햇볕에 2년간 널어둠, 17×6.5cm, 2010

일시 : 2009.08.24~2009.09.12
장소 :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예술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예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저 멀리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에서의 예술과 사회는 거의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착된 관계로 다가가기도 했었으나, 때로는 지나치게 이념적이었고, 또 때로는 과격한 공격성을 보여주었던 아방가르드를 정점으로 차츰 예술의 사회성 논란은 사라져갔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모처럼 관념적인 모티브로 기획된 리혁종 작가의 개인전을 보니 무엇보다도 반가움이 앞선다. 오랫동안 못만난 지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자본주의 자체를 화두로 한 이 전시는 <목숨을 건 도약 - 이카루스,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사이를 날다>라는 거창한 제목까지 달고 있다. 이마저 키치로 보이는 필자의 세속성이 안타깝다. 또 왜 하필 이카루스라는 신화까지 끌여들였을까. 다소 불안하다.

리혁종 작가는 오브제에 조각을 한 작품들을 전시에서 선보인다. 하지만 길에서 주운 의자다리에 조각한 이카루스 <목숨을 건 도약>은 문제의식에 비해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다. 어느 대안공간에서 주운 나무에 제작된 <망명>이나 축령산 작업실에서 주운 나무에 새겨진 만화캐릭터 아톰 <아톰(autumn)> 등도 기대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스럽다. 한강변 공사장의 목재파편으로 제작된 간이 파먹힌 이카루스 <그대가 나의 간을 파 먹을 지라도>나 어느 대학교 공사장의 가로수 파편을 바탕으로 정의의 여신을 더듬고 있는 손을 조각한 <보이지 않는 손>등이 그나마 전시의 정체성을 살려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는 어정쩡한 포지션에서 방황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만원짜리 지폐도안을 배경으로 한 전시포스터엔 키치를 시도하려다가 그만둔 낯부끄러움이 있다. 작가의 전시설명은 기나긴 서론으로 잔뜩 기대를 올리다가 갑자기 헤겔의 흔적을 의심케하는 관념으로 빠져버린다. 자본주의를 공격하겠다는건지 아닌지조차도 모호한 리혁종 작가의 작업은,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사이를 날며 어설픈 화해로 마무리된다. 이카루스처럼 전시 자체가 추락한 기분이 들어 씁쓸한 맛을 지울 수가 없다.

<목숨을 건 도약 - 이카루스,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사이를 날다>는 실컷 변죽만 울리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분명 중요한 요소였을 소재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으며, 개념미술적인 전위성과 키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갈피를 못잡는 작업방향으로 인해 설득력도 떨어진다. 아예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든가, 아니면 아예 재미있게 가든가 분명한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 욕심과 의도는 좋았으나 정작 풀어내는 데에서는 실패했다고 보여진다. 반가웠던만큼 실망감 또한 큰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