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2004)> VS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Ruang rak noi nid mahasan, 2003)>

낯선 땅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사랑, 이 두 영화는 그런 꿈 같고 자극적인 소재를 조용하고 잔잔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서양인의 시선에 본 동양에 관한 이야기,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동양인의 시선에서 본 또 다른 동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낯선 환경에 던져진 우유부단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화면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남녀주인공을 비롯한 주역들이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단지 배경이 미국만 아니면 된다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고도로 문명화되어 있으면서도 적당히 낯선 일본이 배경으로 '캐스팅'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의 시선은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동양에 대한 고정관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를 위한 선택된 무대, 거장의 딸로 기대받았던 소피아 코폴라의 작품이었던만큼 많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에 반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의 공간은 매우 정적이면서도 일상에 보다 가깝게 다가간다. 태국의 스타감독 펜엑 라타나루앙은 태국을 담기 위한 억지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켄지 역, 아사노 타다노부)의 '집'과 여자(노이 역, 시니타 분야삭)의 '집'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특히 노이의 집이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켄지와 노이의 특별하고도 이상한 관계가 서서히 따뜻하게 변해가는 은유로써 보여진다.

두 영화 모두 사랑에 관한 영화지만, 설정이 다르기에 이야기가 풀어지는 방식에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그 제목과는 참 어울리지 않게도 남자(밥 해리스 역, 빌 머레이)와 여자(샬롯 역, 스칼렛 요한슨) 모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대사의 위트나 재치 등은 매우 뛰어나지만, 그만큼 캐릭터와 대사에 의존성이 큰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 안전하게 머물러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일본이라는 배경이 가지는 의미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나는 장면 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삶을 타국땅에서 돌이켜본다는 것은 좋지만, 무대가 자극의 원천과는 별로 관계가 없을 뿐더러, 더구나 단지 간식거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서도 남녀 주인공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지만, 이들의 영어실력은 매우 초보적이고 대화 또한 매우 조심스럽다. 약간의 영어와 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켄지와 약간의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노이. 영어와 일본어와 태국어가 섞이면서, 계속해서 '예? 뭐라구요?'라고 묻는 이들의 대화는 답답하면서도 현실감이 넘쳐난다. 감독이 배우들에게 시나리오조차도 주지 않은 채 상황에만 맞게 대화하라고 자유를 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을 지닌다.

인물들이 가지는 특징들도 빼놓을 수 없는 비교점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캐릭터는 상류사회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잘 나가는 영화배우이자 신사적인 중년의 밥 해리스와 사진작가의 아내이며 소설가를 꿈꾸는 샬롯. 두 사람의 만남은 고급호텔의 바에서부터 시작된다. 반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의 인물들은 말 그대로 하류인생들이다. 도망쳐 온 야쿠자의 동생이면서 결벽증과 정리벽이 있으며 소심하고 책만 좋아하는 켄지와 동생과 함께 세일러복을 입고 여행객들을 접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늘 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노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인물 자체가 가지는 환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인물들간의 이야기로 환상을 만들어간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의 웃음은 인물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에 기인하지만,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서의 웃음은 대부분 두 인물이 서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연유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장점은 문학작품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대사에 있다. 적절한 유머와 간격들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제목으로 인해 줄리 델피 감독이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 2007>에서 남자와 여자를 통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재기넘치는 문화적 대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는 이에 비해 대사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상황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작품으로 다소 엉뚱한 설정이나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