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선택할 때 제목은 매우 중요한 고려요소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라는 제목은 정말 이 작품을 아는 사람들에게 매우 황당하게 느끼지게 된다. 한글제목을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가 주인공이기에 단순히 붙인 게 확실한, 최악의 네이밍 또는 번역으로 손에 꼽을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캐스팅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더 홀(The Hole, 2001)>을 통해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던 도라 버치(Thora Birch) - 참고로 <더 홀>에서는 무명시절의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도 볼 수 있다 - , 어리고 풋풋한 모습을 한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 이 당시 그녀는 겨우 만 15세이다! -, 언제나 모자란 듯 독특한 느낌의 성격파 배우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까지, 유치찬란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캐스팅만으로도 이 작품을 꺼내들만한 이유가 된다.

도라 버치는 "Ghost World" 에서 반항심 가득하며, 세상을 삐뚤게 바라다보는 시각을 지닌 소녀 이니드(Enid)를 연기한다. 이 작품에서의 중심축은 이니드와 각각의 주요인물들과 맺는 관계들이다. 함께 짖굳은 장난을 함께 해왔던 둘도 없는 단짝친구 레베카(스칼렛 요한슨),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과 너무나도 잘 맞는 중년의 이상한 남자 시모어(스티브 부세미), 낙제한 미술과목의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 로버타(일레나 더글라스; Illeana Douglas) 등과의 관계를 통해 이니드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변화를 거부하고 세상을 거부하는 이니드가 블루스 음악으로 가득찬, 세상과는 단절된 방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시모어와의 우정을 쌓아가는 장면은 상징성이 크다. 이 둘의 우정은 서로의 기대와는 엇갈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니드는 레베카와 함께 독립을 선언하지만, 세상 속에서 새로운 관계들에 익숙해져가는 레베카와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져 간다. 이니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들어야만 했던 미술수업을 통해 자신만으로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는 방법을 찾아나가게 된다.



<고스트 월드>라는 제목은 이 영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각각의 인물이 가지는 감정은 서로간에 맺는 관계 속에서 빗나가기만 한다. 이니드는 제목 그대로 Ghost World 속에 내던져진 고독에 방황하는 인물이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가장 외롭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많은 관계들을 맺고 있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불현듯 찾아올 때가 있듯 말이다. 이니드는 자신을 둘러싼 Ghost World에서 탈출해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세계를 찾아떠난다. 적당히 편안한 타협적인 세계와 낯설고 끝없이 찾아나가야할 타협없는 여행. 선택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쪼록 이니드의 여행이 순조롭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