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휴가를 떠난, 1970년 브라질의 이야기. Screen, Sports, Sex라는 정치공식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한국의 제5공화국과 1988년 올림픽이 떠오르게끔 하는 영화이다. <부모님이 휴가를 떠난 해(O ano em que meus pais saíram de férias, 2006)>에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주요소재가 되었다.

오프닝씬에서 축구에 열광하는 한 소년이 그려진다. 축구공과 축구게임이 가장 큰 보물이며, 축구중계는 결코 놓치지 않는 한 소년 마우로. 마우로의 부모님은 갑자기 휴가를 떠난다며 그를 할아버지집에 맡겨둔다.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하지만 할아버지의 문은 잠긴 채 열릴 줄을 모른다. 잠긴 문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마우로를 담은 역광씬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우로는 할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마우로의 앞에 옆집 할아버지 슬롬이 나타난다.

슬롬은 아이를 싫어하는 약간은 괴팍한 유태인 노인이다. 마우로를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걱정이 되어 돌아주기 시작하는 슬롬. 꼬장꼬장한 노인과 축구 밖에 모르는 두 사람의 동거생활은 흥미진진하다. 슬롬과 함께 지내면서 마우로는 이런저런 친구도 사귀게 되고, 어느새 월드컵이 다가오게 된다. 화려한 월드컵의 흥분 속에 정작 월드컵 전에는 돌아오겠다던 마우로의 부모님을 돌아오지 않는다. 거리는 온통 축제의 분위기. 마우로는 그렇게 기다리던 월드컵중계를 뒤로 한 채 텅 빈 거리로 나선다.

이 작품은 월드컵의 화려함과 군부독재의 공포를 한 소년의 시각을 통해 빼어나게 엮어내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이 빚어내는 슬픈 거짓말이 즐거운 축제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둠이 드리워진 사람의 표정 속에 베어난다. 축제행렬이 지나간 쓸쓸한 거리를 걷는 마우로의 모습은 가히 압권에 가깝다. 그렇게나 기다려왔고, 그렇게나 즐거울 것만 같았던 1970년의 월드컵. 브라질이 줄리메컵의 영구소장으로 기억되는 그 해의 숨겨진 진실들.

영화 <개 같은 내 인생(Mitt Liv Som Hund, 1985)>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와 조금은 다른, 탁월한 미장센과 재치있는 장면들, 그리고 소소한 감동과 잊을 수 없는 시대적 아픔들을 모두 담아낸 걸출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