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의, 신념, 국가, 국민, 가족, 민족, 도덕, 윤리, 당위, 충성, 우리, 나의, ~을 위하여 등등...

이러한 개념들은 필요악처럼 느껴지면서도, 기실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요소들이다. 어쩌면 완전히 사라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환상을 불어놓고, 사기를 치는데 가장 좋은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사기와 사이비교와 국가주의 간엔 그런 공통점이 있다. 너와 내가 함께 한다는 망상을 품게하고, 때론 선민의식에 젖게 하기도 하고(지구상에 선민의 단위는 모든 사회적 개체의 합만큼 존재한다), 그리고 자기가 옳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주며, 동시에 요구한다.

강력한 배타성과 전염성, 자기도취에 물든 사회가 더 이상 팽창하기 힘든 경제적 상황에 놓일 때, 제노사이드나 홀로코스트 내지는 테러와 같은 형태의 조직적인 폭력이 발생한다. 이 과정은 늘 명확한데, 우선 케케묵은 역사적 앙금이 있는 대상에서, 어느 정도 사회에 경제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이방인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하층민 내지는 소외층으로 향한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자승자박의 꼴이라는 걸 비로소 눈치 챈 비판자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미 이 때엔 내란 내지는 전쟁이 일어나고 난 후이기 일쑤이다.

이러한 광신적인 폭력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모든 살육과 잔인함을 겪은 후에도, 인간이성의 반성이라는 빛이 미치지 못하는 "그들만의 숭고"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당연하게도 자신(들)이 옳거나 혹은 우월하다는 어이없는 착각 아래 배타적 분노가 담긴 철퇴를 무비판적으로 휘두른다.

인간의 역사는 가치 확대의 역사이다. 늘 새로운 가치들을 찾아내고, 그 영역을 확대시켜왔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부분별한 분노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마련해가고 있는 안전망일지도 모른다. 사실 가치는 많을수록 좋고, 공통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하나라는 이름 하에 많은 사람이 뭉칠수록, 오히려 한 개인의 판단력보다도 나을 게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임의의 단체의 문화적, 지적 수준은 어떤 임의의 개인의 문화적, 지적수준보다 항상 못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