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기시대의 소녀

 iya(
이야) 이야기
 
이른 아침, 숲 속 보금자리에서 소녀가 걸어나온다. 햇살 줄기가 소녀의 눈으로 날카롭게 떨어져 내리고 발아래 계곡은 안개가 자욱하다. 소녀의 이름은 이야.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는 이야는 계곡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메아리가 계곡으로 퍼져나가고 안개 낀 숲에서 청회색 산새 몇 마리가 날아오른다. 이야는 시선을 돌리다가 꽃사슴 한 마리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능숙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계곡 아래로 뛰어간다

한참을 내달린 후 계곡 한 구석에서 사슴을 발견한다. 사슴의 거대한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발버둥치고 있다. 이야는 사슴의 눈을 보며 천천히 다가간다. 사슴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진다. 이야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다. 사슴은 서서히 경계를 푼다. 다가가 가지를 들어올려 사슴을 자유롭게 해준다. 사슴이 저 멀리로 사라진다. 이야는 사슴이 걸린 은행나무가 맘에 든다. 거대한 가지를 부러뜨려 하늘로 치켜세운다. 이야는 미소 짓는다.
 
강가에 도착한 이야는 주먹돌로 나뭇가지를 다듬는다. 먼저, 껍질을 벗긴 후 거친 표면을 정성스럽게 다듬는다. 부족의 상징을 새겨 넣고 동족의 향기가 배어 있는 나무기름을 바른다. 날카로운 창 하나를 완성한다. 바로 사냥에 들어간다. 단번에 강 속으로 뛰어들어 잠수를 하며 물고기를 찾는다. 모여 있던 물고기들이 물수제비처럼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진다.
 
물고기 다섯 마리와 뾰족한 주먹돌 하나. 포획물을 늘어놓고 몸을 말리며 쉬고 있는데 저 멀리 먹구름의 빠른 움직임이 보인다. 폭풍의 기운이다. 이윽고 저 들판 너머에서 하늘이 번쩍하더니 천둥이 친다. 그 번개에 거대한 나무 하나가 쓰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야의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호기심 많은 소녀는 주저하지 않고 들판을 달리기 시작한다.
 
번개 맞은 나무는 여전히 불꽃이 튀고 있다. 소녀는 번개에 쓰러진 나무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그리고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다가 그 중 마음에 드는 나무의 조각을 발견한다. 이야는 부서진 나무 조각을 품에 안는다. 나무는 따뜻하다. 사람을 안았을 때의 온기가 나무에서 전해진다.
 
유난히 달이 밝은 날이다. 달빛이 떨어지는 그루터기에 검은 항아리 하나가 놓여진다. 이야가 만든 나무 항아리. 달빛을 담는 그릇이다. 정성에 정성을 들여 서른 밤을 넘게 만든 물건이다. 엄마 나야가 이야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소녀는 눈을 들어 엄마와 달을 번갈아 쳐다본다. 겨울이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한 밤이다.





👄💪


나무로 만든 달항아리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김규 작가의 개인전이 
11월 중순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 열린다. 

목재가 가진 부드럽고 섬세한 질감과  자기가 가진 형태적 아름다움이 결합된 
그녀의 작품이 일정한 테마와 이야기성을 가지고 대중과 만난다. 

작가의  창작 활동으로서의 작품 생산이라기 보다, 
신목재 시대의 그릇이었던, 
혹은 항아리였던 작품을 발견해가고 
발굴하는 개념으로 접근한 게 인상적이고 재밌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