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우, Star Pattern Shirt 2011, live video installation, mixed media, various dimensions
출처 : 송은아트스페이스

-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 바로 이 방안에도 있고, 창 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 무슨 진실요?
- 네가 노예란 진실. 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감옥에서 태어났지. 네 마음의 감옥. 불행히도 매트릭스가 뭔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 직접 봐야만 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약을 먹으면 여기서 끝난다. 침대에서 깨어나 네가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명심해. 난 진실만을 제안한다.

- The Matrix is everywhere. It is all around us. Even now, in this very room. You can see it when you look out your window or when you turn on your television. You can feel it when you go to work, when you go to church, when you pay your taxes. It is the world that has been pulled over your eyes to blind you from the truth.
- What truth?
- That you are a slave. Like everyone else, you were born into bondage born into a prison that you cannot smell or taste or touch. A prison for your mind. Unfortunately, no one can be told what the Matrix is. You have to see it for yourself. This is your last chance. After this, there is no turning back. You take the blue pill, the story ends, you wake up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 hole goes. Remember, all I'm offering is the truth. Nothing more.
-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 중에서

그의 세계는 매트릭스적인 세계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관객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공범자가 되어버린다. 아무런 의미 없이 툭툭 던져놓은 듯한 설치물들과 모니터 화면에 영문도 모른채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당황스럽게도 어느샌가 화면 안에서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전시장에 놓여진 사물들과, 벽, 그리고 관객들까지, 모든 것들은 단 하나의 특정한 시선을 구성해내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한경우 작가의 작업에선 조작이란 없다. 그저 '우연히' 거기에 위치한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의도만이 있을 뿐이다. "Red Cabinet, 2005"에서의 TV의 방송조정화면도, "Tableau with Objects, 2008"에서의 몬드리안의 회화도, "Star Pattern Shirt, 2011"에서의 미국 성조기도, 특정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일단 화면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이는 곧 견고한 틀로 탈바꿈한다. 전시장 안의 모든 것들이 오직 사각의 프레임 안에 비춰지는 화면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면의 영상이 실시간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관객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중립적인, 혹은 객관적인 관찰자로 머물도록 허용받지 못한다. 방송조정화면으로, 몬드리안의 회화로, 미국 성조기로 화면을 만들어내는 카메라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피사체로써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피사체는 카메라의 의도를 고스란히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관객들은 카메라의 시선을 강화하며, 최소한 카메라의 시선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게다가 실시간 영상이라는 사실은 한경우 작가의 작업을 철저하게 현재화시켜 놓는다. 그의 공간은 과거나 미래에 존재했거나 존재할 어떤 곳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갤러리를 걷고 있는 관객, TV를 보고 있을 누군가, 직장에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 어떤 이의 모든 현재들로 확장할 수 있다. 그냥 그런가보다라며 무심결에 믿고마는 얄팍한 삶의 풍경들. 빨간 약을 먹는 아주 작은 선택만큼이나 카메라의 시선을 아주 약간 돌려놓기만 해도 매트릭스의 견고함은 어처구니 없는 파편들로 쪼개어져버린다.

"Triangle, Circle and Square, 2008"는 아마도 가장 압축적인 작업이 아닐까 싶다. 보는 방향에 따라 하나의 사물은 삼각형으로도, 원형으로도, 사각형으로도 손쉽게 바뀌어간다. 분명 규정된 시선은 세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한 규정은 곧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고야 만다. '세상은 그런거야'라고 말할 때 나는 이미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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