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Nanda 개인전 '진실과 허상의 전이'
장소 : 통의동 보안여관
기간 : 2011.11.7 ~ 11.20
+ 창문전시 : 이피 개인전 '이상의 혼장례' (2011.11.7 ~ 2011.11.26)


궁합이 잘 맞는다. 공동작업인게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일단 보안여관 유리창에 세로로 정갈하게 자리잡은 "결혼행렬이 장례행렬이 되는 그 불우한 혼례"라는 문구부터 도저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너덜너덜 레이스가 붕대를 칭칭 감은 마냥 봉제된 웨딩드레스를 입은 황태포 신부, 온몸의 세포가 증발해버리기라도 한 듯 몸의 구석구석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와이어 신랑의 우울한 결혼식. 공허하고 썰렁한 예식을 초라하게 밝혀지는 LED 화촉은 안 그래도 추워져가는 겨울을 더욱 스산하게 만든다.

이상의 인생과 문학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피 작가의 작업에선 결혼식과 장례식이라는 특별한 날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보안여관의 전시에선 스토리도 없을 뿐더러 로맨틱하지도 않다. 이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 박제라는 용어부터 머릿 속을 맴돈다. 이상과 그녀의 특별한 하루는 박제되었다. 여기엔 행복도 불행도 치열한 삶의 흔적 같은 이야기도 없다.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



난다, 0214, 120×150cm, 잉크젯 프린트, 2011
출처 : 보안여관 홈페이지


시린 겨울바람을 피해 여관 안으로 들어가봐도 따뜻한 온기는 찾을 수 없다. 한 문학인의 박제된 하루는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현재화된 익명의 박제로 탈바꿈한다. 난방기구 하나 없는 여관방의 시멘트바닥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특별한 날들이 한기를 내뿜고 있다. 정중앙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기필코 웃어보이고야 마는, 기념사진의 행렬 "그들의 날들"은 누추하게 발가벗겨진 여관방보다도 더욱 초라하다. 인터넷을 떠다니며 보아왔던 수많은 사진들이 떠오른다. 업로드되는 순간부터 단절감만을 더해가는 사진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서게 되면 단절감은 공포가 된다. 난다 작가가 펼쳐내는 기념일의 의식은 그야말로 살풍경하다.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되어 하트와 초콜렛이 넘실거리는 "0214"에서는 남자의 잘린 머리를 껴앉은 여성의 지독하고도 절절한 사랑의 풍경이 펼쳐져있다. 또 온통 검은 색으로 장식된 "0414"의 한 남자가 흘리는 짜장면 눈물에서는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인형을 곁에 둘 수 밖에 없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가하면, "0303"의 나무에 메달린 삼겹살들이 떨구어내는 진한 핏물에서는 삼겹살데이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하는 돼지의 심정을 공감해볼 수도 있다.

"0505"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짓는 기괴한 표정들은 더욱 압권이다. 풍선을 들고 파티를 하는, 코 앞에 잔뜩 쌓여진 간식을 입에 넣는, 한 가정의 왕자님으로 목마 위에 오른, 그런 아이들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선 일말의 초조함마저 엿보인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전시를 보안여관에서 2주간 머무는 투숙객의 처지로 격하시켜버리는 "보안여관"에 이르게 되면 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한 전시공간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싶은 마음 따위는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날들. 연말이 시시각각 다가오며 거리에 불빛들이 반짝이는 이 겨울날, 보안여관 안에선 한 해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다. 수많은 날들이 있었지만, 어느 하나 딱히 기억나는 날은 없다. 그저 연말정산을 앞둔 너절한 영수증의 기록만이 어느 시간에 어느 곳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을 우울하게 증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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