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 송은갤러리
기간 : 2011.9.3 ~ 2011.11.19

이 전시의 백미는 포스터이다. 럭셔리한 거리의 럭셔리한 갤러리에서 럭셔리한 인물이 모아온 럭셔리한 컬렉션이 모여 자기자신을 비웃는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제목이자 전시제목이기도 한 "고뇌와 황홀Agony and Ecstasy"이라는 붉은 색으로 포인트를 살린 글자들은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보다도 편의점의 간편이 강렬하게 반사광을 발휘하는 갤러리의 옆면에 조그맣게 인쇄된 포스터, 제프 쿤스Jeff Koons의 "부르조아 흉상 - 제프와 일로나Bourgeois Bust - Jeff and Ilona, 1991"가 더욱 눈에 띈다. 이 전시, 천박하다.

아마도 경건하고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전시장을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악하게 될 것 같다.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작품의 모여있는 첫 전시실의 첫 작품 "필로폰Hiropon, 1997"은 만화적인 여성캐릭터가 자신의 손으로 쥐어짜고 있는 거대한 가슴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모유라고 추정되는) 흰 액체에 둘러쌓인 채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My Lonesome Cowboy, 1998"가 보인다. 역시나 만화적인 남성캐릭터는 또 다른 엄청난 양의 (정액으로 추정되는) 흰 액체가 뿜어져나오는 자신의 성기를 붙잡고 있다. 배경에는 이 액체들이 사방으로 튀어다니는 "크림Cream, 1998"이라는 회화가 전시장의 마무리를 찍어보인다.



첫 전시장이 워낙 강렬해서 다음 전시장에서 조금 호흡을 가다듬고 싶지만,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걸 너무나도 좋아했던 제프 쿤스 덕분에 이마저도 어려워진다. 포스터 이미지이기도 한 "부르조아 흉상 - 제프와 일로나"가 올라오는 발걸음을 맞아준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장을 차지한 제프 쿤스와 일로나 스탤러인 치치올리나의 노골적인 정사장면은 관객들에게 잊지못할 충격을 안겨주며 그들을 세기의 커플로 만들어놓았다. 포르노 배우로써 이탈리아 진보당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등의 아주 흥미로운 이력을 지닌 일로나는 "부르조아 흉상 - 제프와 일로나"에서 보석으로 몸을 두른 채 제프 쿤스의 손길(혹은 욕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정도의 강렬한 작품들이 이어지다보니 그의 최근작, "네덜란드인 커플Dutch Couple, 2007"이나 "올리브 오일 (빨강)Olive Oyl (Red), 2004-2009" 등은 그가 들인 공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물질적 화려함을 더하는 배경정도로만 보인다.

마치 남성과 여성의 천박함을 대비시키기라도 하는 듯 전시장의 다른 편에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 뒤로 "무제, 헐리우드 자화상 연작Untitled, Hollywood Portrait Series, 2000", 양 옆으로 "무제, 발렌시아가 자화상 연작Untitled, Balenciaga Series, 2007-2008"이 죽 늘어서며 신디 셔먼의 유치찬란한 셀카놀이가 펼쳐진다. 그녀가 헐리우드 배우들을 흉내내거나 발렌시아가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모델처럼 이런저런 포즈를 연출하고 있으리라는 건 제목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덕지덕지란 수식어 외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화장, 쌩뚱맞게 터지는 플레어, 실사의 사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라데이션 등에 익숙해진 채 화려한 명품샵으로 가득한 강남의 거리로 나서게 되면, 마치 쇼윈도우의 옷을 걸치고 셀카를 찍고있는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자신감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해서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Damien Hirst, Matthew, Mark, Luke and John
Steel,glass and formaldehyde solution containing cows heads and mixed media
Each aquarium 45.7x91.4x45.7cm, 1994-2003
출처 : 송은갤러리

그리고 데미안 허스트가 있다. 이 시대의 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심지어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역시나 첫 작품 "매튜, 마크, 루크, 그리고 존Matthew, Mark, Luke, and John, 1994-2003"부터 심상치 않다. 포름알데하이드에 절여놓은 4개의 소머리에 포크와 나이프 등의 식기가 거침없이 꽂혀져있다. 소머리의 앞자리마다 책 한권이 묵직하게 놓여져있고, 이 작품의 제목은 마테오, 마가, 누가, 요한으로 이어지는 신약성경 첫 4복음서의 성자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옆의 "고뇌와 황홀"에서 실제의 나비들이 죽은 채 날아다니고 있다. 전시제목이자 작품제목,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서신을 엮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친절한 전시설명을 보고 있다보면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막힌 배치감각이 느껴진다.

너절하게 해부되어버린 고전 뒤로 수많은 죽음들이 이어진다. "내게 등을 돌려Turn Away From Me, 2009"의 절망감을 향해 "죽음의 키스The Kiss of Death, 2005"의 심장을 꿰뚫은 칼날이 다가온다. 그 뒤로 (정확한 해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막다른 골목, 소멸된, 검시된Dead Ends Died Out, Examined, 1993"의 니코틴 향기 위로 "나쁜 소식Bad News, 2005"의 까마귀들이 날아다닌다. 이 전시를 끝맺는 경쾌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4개의 작품으로 갈무리되는 죽음의 풍경은 엄숙하면서도 가볍다. 세상의 모든 화려함이나 진지함을 모두 부정해버리는 것만 같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고나할까. 장황한 설명보다는 하나의 인용이면 충분한 상상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을 것 같다.

"흡연은 하나의 작은 삶의 순환과도 같아요. 내게 담배는 삶을 상징할 수 있죠. 담배로 채워진 담배갑은 탄생을 상징해요. 라이터는 신을 의미하죠. 상황에 관계없이 생명을 부여하는 신 말이예요. 재털이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당신은 이게 어처구니없이 느껴질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은유적인 것은 어처구니없는 것이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죠.The smoking thing is like a mini life cycle. For me the cigarette can stand for life. The packet with its possible cigarettes stands for birth. The lighter can signify God, which gives life to the whole situation. The ashtray represents death, but as soon as you read it like that you feel ridiculous. Because being metaphorical is ridiculous, but it's unavoidable"
- Damien Hirst quoted in R. Violette & D. Hirst, "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 London 1997, p. 102

이 전시는 천박하지만, 또 대단히 압축적이고 간결하다. 작품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은 끊임없는 강강강의 리듬으로 이어지며 혼을 쏙 빼어다놓는다. 마치 프랑소아 피노가 지닌 구찌, 알렉산터 맥퀸, 스탈라 매카트니 등의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연이어 방문하며 화려함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걷다가, 어느샌가, 생각 외로 일찍 끝나버리는 길 끝에서 '뭐야 이게 끝이야?'라며 허탈하게 내뱉는 한숨과도 같다. 이 전시를 보고나서는 핫 초콜렛을 마시길 권한다. 커피는 허무함을 더하고, 와인은 치명적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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