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eke Van De Voort, 627K, performance, image Nadia Beddega

출처 :
http://www.theshowroom.org/


미케 반 데 보르트Mieke Van de Voort

1972년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며 주목을 모았으나, 안타깝게도 올 2011년 1월 3일 유명을 달리하였다.


삶은 엉망이다. 각종 도구를 활용한 인간관계는 점점 더 확대되어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전화를 사용하면서부터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부터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고서부터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필요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타인과 나 사이에 세워진 벽은 이제 동화에서 보듯 물리적 장벽이나 심리적인 폐쇄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미케 반 데 보르트는 흔히 쿨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일방적인 무관심의 장벽을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곳곳에 세워놓는다.

미케 반 데 보르트의 작업들은 한눈에 라스 폰 트리에가 "도그빌Dogville, 2003"과 "만덜레이Manderlay, 2005"에서 시도했던 무대를 연상시킨다. 두 영화에서 바닥에 그어놓은 선은 벽으로 약속된 하나의 장치와도 같았다. 물론 실제의 벽이 없는만큼 아무런 실질적인 제약 같은 건 없었고, 그렇기에 영화가 의도했던 충격은 분명히 바라보고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으로 인해 더욱 더 끔찍했던 기억이 되었다. 미케 반 데 보르트 역시 기본적으로 라스 폰 트리에의 무대처럼 바닥에 그어놓은 선을 벽과 같은 장치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녀는 네러티브를 제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관객들의 발 아래 보이지 않게 그려진 선들을 드려내려 한다.

선입견은 누구에게나 있다. 미국에서 사는 어느 변호사나 강원도의 어느 할머니, 중동에 사는 어느 청년에게 보내는 시선과 태도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들 중 어느 한 명과도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래서 "보편국가General States, 2008-2009"에서 미케 반 데 보르트가 그어놓은 선은 일종의 정보적 실명상태처럼 다가온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들은 이미 사회의 구성원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선입견에 사로잡혀있고, 만약 이 정보가 대중의 정서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찍는데 아무런 주저도 하지 않는다. 바쁜 세상에 직접 질문을 던질 의향이나 겨를이 있을리 없다. 어디선가 그 사람의 행동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들만이 끊임없이 나타나 판단을 부채질할 뿐이다.

세상에서 고립되어 살던 고인들의 방을 사진 속에 담은 일련의 작업들은 그녀가 사회적 무관심과 일방성에 얼마나 진지한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온방의 곳곳에 삐뚜룸하게 걸린 혼자만의 기념품들과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옷가지들로 가득찬 채 어지롭게 흐트려뜨려진 좁은 방을 보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쉽사리 발걸음을 들여놓기 어려운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미케 반 데 보르트는 아마도 사회복지사가 아니라면 낯선 타인을 허용하지 않았을 방 안에서 비현실감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들과 자신들이 똑같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기나 했었을까. 현대사회는 약자들을 보호해야 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염병의 위협을 받는다고 가정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역할게임을 주문한 "627K, 2010"는 서로 마주하는 대화를 위한 절박한 시도처럼 보인다. 시장과 경찰, 의사 등으로 역할을 받은 참여자들은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협력을 해야만 한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일방적일 수 없지만, 한편으로 공동의 위기라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광장의 휴머니즘엔 다소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위기가 지나가고나면 잠시나마 허물어졌던 선은 다시금 점차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넓혀갈 것이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얼굴 자체가 지닌 설득력으로 윤리를 이야기하던 철학자 레비나스에게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른 이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감은 미케 반 데 보르트에게 절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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