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rage : Prologue, variable size, digital print

The Mirage

"어떤 시점부터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곳이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 프란츠 카프카


Prologue

"외부세계가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부터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게 고통스러워지면 외부세계는 사라진다." - 에밀 시오랑

우리는 거울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벗도 연인도 없다. 안내자도 없다.
버려진 체스의 말(馬)이 여기 놓여 있다. 여행을 눈앞에 둔 소외된 신화(神話)이다.
그를 위한 노래가 여기 있다.

웃지 않는 천사들의 노래

놀라겠지만 믿지 않으리
매혹되지만 사랑 않으리
열망하지만 멈추지 않으리

모든 접촉으로부터 차단되어 다만 지켜만 보리!

이 유일한 시도는 희극(喜劇)
하지만 그 정의는 곧 비극(悲劇)이 되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새들의 깃털 아래로 떨어지는 그림자들
진실은 소리낼 수밖에 없지만
상실감 때문에 듣지 못하리

어떻든 길을 잃었으니
떠나야 하리
어떻든 추방 되었으니
떠나야 하리





The Mirage : Act 1, Scene 1 #1, variable size, digital print

The Mirage

"어떤 시점부터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곳이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 카프카

1막 : 소멸의 세 가지 풍경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거울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의식에는 필연적으로 거울이 필요하다. 또 이것은 일종의 체스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파괴하거나 정복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다. 길을 잃었기에 떠나는 것이다. 조각났기에 보려는 열망이다. 벗도 연인도 없다. 안내자도 없다.

거울의 표면 위로 떠오른 말(馬)의 등장
삶이란 게임에서 이탈한 신화(神話)의 출현

완벽한 침묵 속에서 존재는 여행을 갈망한다. 니체라면 '비극적 유희와 비극적 엄숙함' 속에서 시작된 방랑이라 정의하겠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여행은 처음부터 소멸의 좌표로 열린다. 세 도시의 소멸.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쟁의 구역(인간의 죽음), 문자의 장벽(언어의 죽음), 숫자의 건축(수의 죽음)





The Mirage : Act 1, Scene 1 #2, variable size, digital print

1장 : 전쟁 (인간의 죽음)

첫 번째는 전쟁이었다. 인류라는 특이한 종(種)의 집단적 죽음.
집단적 지성과 집단적 광기의 뒤섞임. 초월은 초월적 무기가 되어 20세기에 태어난 언어는 ‘학살’이었다. 쓰러진 사람 위로, 또 한 사람이 쓰러지고, 그 쓰러진 사람 위로 또 다른 사람이 쓰러진다.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중얼거린다. 변명이거나 연민이다. 누군가 밑에 있는 자의 귀에 대고 부드러운 문명을 속삭인다. 그건 군가(軍歌)이다.

경직된 구호
경직된 명령
조급한 처형대

체계들, 이론들, 유령들...

참호 속에서 시를 쓴 사람도 있지만 참호 속에서 영원히 침묵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지금도 땅을 파면 무기가 나온다. 침을 뱉어라!
그리하여 인간은 집에 돌아오면 손을 씻는 것이 의무가 됐다.





The Mirage : Act 1, Scene 1 #3, variable size, digital print

유령들의 노래

술은 파는 아이는 용감했네
책을 소리내 읽는 처녀는 용감했네
옆마을로 도망간 과부는 용감했네
십자가가 없는 성자는 용감했네
참회하는 점쟁이는 용감했네
도망가는 왕은 용감했네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은 용감했네
그들이 모두 사라졌네

사슴이 숲에서 내려와 울었네
마을 입구에서 울었네
달빛 속에서 울었네
다들 알고 있었네
그 마을에는 더 이상 아름다운
처녀가 없었네
그들이 사라졌네

모두 총소리를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