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9월은 문화의 계절이다. 아직 거리는 열기가 뜨거워 발 디딜 틈조차 허용하지 않지만, 각종 축제와 전시는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며 이른 가을을 맞이하는 듯 하다. <이천 국제조각 특별전>, <광주 비엔날레>, <인천 디지털아트 페스티벌>, <서울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대구 사진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 등 큼직큼직한 행사들 틈으로, 기대되는 전시들도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시작되는 갤러리 도어의 기획전 <전설의 고향>도 이색적인 소재로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주목할만한 전시 5개를 꼽아보려 한다.


성병희, 나만의 써커스, 장지에 혼합재료, 131×163cm, 2007
출처 : http://neolook.net/

성병희 개인전 : 살아남기

일시 : 2010.08.20 ~ 2010.08.30
장소 : 나무화랑

어두침침한 방 소녀가 인형의 입과 귀와 눈을 막는다. 가슴 속에서 튀어나온 까마귀는 머리를 쪼아대고 있다. 성병희 작가의 화폭은 우스꽝스럽지만 비극적이다. 풍부하게 반짝이는 질감은 자괴감이 되고, 시뻘겋게 불타는 배경은 세상의 광대놀음에서 받은 상처가 된다. 오마쥬는 시체의 손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 인물의 목을 조르려 한다. 희화화된 비극, 혹은 잔혹동화. 성병희 작가는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로 상처를 받는 인간을 묘사한다.




김승택, 만두가게, 90x150cm, Digital Print, 2010
출처 : http://www.artmail.co.kr/

김승택 개인전 : Heiqiao

일시 : 2010.09.01 ~ 2010.09.15
장소 : 스페이스 캔(성북동)

커다란 원 안에 갖힌 마을. 모락모락 만두를 쪄내던 찜통도, 힘겹게 끌어가던 리어카도, 평화롭게 페달을 달리던 자전거도, 이제는 집과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 마치 마을을 포위하듯 담장이 세워지고, 그리고 그 위로 재개발의 표어가 무표정하게 나부끼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김승택 작가는 베이징 북동쪽에 위치한 헤이차오(黑橋)의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찬 집들의 기억을 펼쳐보인다. 사진으로 재구성된 일상의 풍경, 그리고 사라질 운명을 암시하듯 하얗게 색을 잃어버린 집. 개발이라는 현판 아래 하나씩 사람을 떠나보내고 집을 철거할 때마다, 사회는 조금씩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소원 하나가 이루어지면 기억 하나를 잃어야했던 것처럼 말이다.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 Seeping Beauty, 230x180Cm, C-Print, 2009
출처 : http://kangeugene.blogspot.com/

배찬효 사진전 : Fairy Tale Project

일시 : 2010.09.02 ~ 2010.09.08
장소 : 트렁크 갤러리

한 남자가 동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우습게도(?) 여주인공이다. 백설공주가 되어 사과를 한 입 베어물어도 보고, 라푼젤이 되어 머리를 길다랗게 늘여뜨려보기도 한다. 화장을 하고 코르셋을 입는 색다른 체험. 이미 <Existing in Costume>에서 영국여인이 되었던 배찬효 작가는 의상을 통해 차별의 역사를 재확인한다. 움직이기에도 불편한 의상으로 구분되었던 전통의 의미, 어디까지나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던 동양남성으로써의 현재. 그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려야만 했던 동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 유럽사회 안에서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이재민, The stranger, 91.0cmx72.7cm, oil on canvas, 2009
출처 : http://blog.naver.com/minimini20t

이재민 개인전 : Hello Stranger?

일시 : 2010.09.02 ~ 2010.09.08
장소 : 갤러리 도어(동교동)

담배를 문 악녀, 혹은. 목에 까만 리본을 단 여성이 으스스하게 미소짓는다. 음흉하면서도 부끄러운 눈빛이다. 옷을 벗고 욕망을 유혹하지만, 화병 뒤에 스스로를 감춘 수치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요염한 자태를 취하고 있는 여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다. 이재민 작가는 타인의 욕망을 투영하는 여성에게서 낯선 이방인을 발견한다. 공허한 담배연기로 표정을 감추고, 꽃으로 수치심과 절박감을 감춘다. 타인의 외로움을 달래는 이방인들은 정작 자신을 외롭게 만든다.




이원철, cicle of being#1, C 프린트, facemounted with plexiglas, 75×75cm, 2008
출처 : http://www.artmail.co.kr/

박시찬, 이원철 2인 사진전 : Unfamilier Sights

일시 : 2010.09.03 ~ 2010.09.28
장소 : 갤러리 아트사간

시간이 멈추어선다. 어섬푸레한 옛 기억들은 흐릿한 풍경으로 채색되고, 쇠락할 수 밖에 없는 삶의 허망함은 노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묘지가 된다. 박시찬 작가는 하얀 빛무리로 사람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는다. 마치 멍한 시선에 담겨진 조용한 회상처럼 모호하면서도 묘한 향수가 깃든다. 반면 이원철 작가는 특유의 색채로 묘지 위의 기나긴 사색에 빠진다.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해야만 하는 생명의 필멸성이 고이 담겨진 시간의 흐름 안에 점철되어간다. 두 작가의 전시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회화적이고 또 문학적이다. 초현실적이면서도 차분한 풍경으로 자신만의 사색들을 풀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