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휴식,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30*162cm, 2008
출처 : http://neolook.net/

일시 : 2010.07.01 ~ 2010.07.30
장소 : E-Land 그룹 가산사옥(가산디지털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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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들을 수식하는 단어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흔히 서태지로 말해지는 새로운 문화세대이기도 했지만, IMF 덕에 한순간에 무너지는 부모세대의 공든 탑을 봐야했으며, 또한 본고사의 끝자락에서 매일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으로 피를 보기도 했으며, 대학에선 사라져가는 낭만의 끝에서 비아냥도 들어야만 했고, 그리고 현재는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마저 지니고 있다.

아무 것도 잘못 하지 않았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가까스로 살아가다보니, 어느새 이전 세대들에게도 이후 세대들에게도 왜 그러냐는 말만 듣는다. 완전히 고집스럽지도,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던 세대. 어쩌면 이들이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건 1988년을 전후로 가졌던 유년기의 따뜻한 향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마음앓이. 이영수 작가는 이 세대의 추억을 통해 여전히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는 세대의 비애를 담아낸다.

일요일 새벽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TV를 틀었던 기억들. 이영수 작가의 꼬마영수는 찰리 브라운과 함께 담장 위에 나란히 기대 웃음을 짓는다. 하드 하나면 아무리 심한 부모님의 꾸지람도 금새 잊어버렸고, 조그만 아이들에게 애인은 필요하지 않았다. 반 마다 왕처럼 행세하는 힘좋은 아이들은 그저 짖궂기만 했었고, 소풍 때면 조그만 시내에 뛰어들어 흠뻑 물을 적시기도 했다. 아직 과외라는 단어가 낯설었고, 조기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던 시절, 마치 시간은 꼬마 영수의 편인 것만 같았다.

소박하고 간결한 라인, 마치 오래된 필름의 그레인처럼 틈틈히 공간을 메운 점묘는 따뜻한 추억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훌쩍 자란 꼬마영수도 과거의 기억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서정성 가득하던 색감은 점차 분명해지며 꼬마영수의 현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에 담긴 꼬마영수는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은 채,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채 부셔버리는 재개발의 현장에서 향수의 위기에 빠진다.

기억과 현재 간의 타협하기 힘든 거리감. 수묵에서 시작해 각종 미디어로 보다 현재에 다가가고 있는 이영수 작가의 변화는, 마치 작가가 속하는 세대의 변화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 같아 즐거움보다는 쓸쓸함이 앞선다. '꼬마영수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제 화분에서 살기에는 너무 커버렸으니까요'라는 작가의 만화 속 대사는 그의 변화에 담긴 거리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듯 하다. 무어라 딱히 말하기 힘든 울컥함이 있던 기억의 동화가 과연 현실의 기록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