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제스쳐나 행동들을 취함으로써 작품 안에서 일종의 일탈을 꿈꾸고 있습니다."

얼룩말과 여성, 밤의 금기, 붉게 새어나온 피에 비친 노골적인 교태. '문명이 숨겨놓은 밤의 어둠을 밝고 환한 색채' 안에 드러내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화가, 김지희를 만났다.



김지희,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 pen, pencil on snow white paper 132*72cm, 2008


Q. 일단 말이라는 소재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작품에서는 얼룩말에 집중하시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예요.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우선 '말'이라는 동물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성적 상징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성적인 코드를 지닌 농담들이라던지, 언어적 표현들... 그런 곳으로부터 '동물적'인 영감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제가 작업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큰 틀인 '욕망'중에서도 '성적욕망'에 포커스를 두고, 말이라는 동물이 지닌 상징을 가져왔습니다.

초창기 다양한 말에서 얼룩말로 집중하게 된것은, 얼룩말이 가지고있는 흑과 백의 강한 시각적 효과와 그 곡선에서 오는 선의 강렬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Q. 사람의 신체와 말의 머리의 조합이 재미있습니다.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작업은 모두 저를 빗대어 나타낸 일종의 자화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제가 '얼룩말 가면(mask)'을 쓰고 작품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제스쳐나 행동들을 취함으로써 작품 안에서 일종의 일탈을 꿈꾸고 있습니다.



Q. 제목이라든지, 소품 등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의도한 바가 있는지요?

제 작업에서 제목은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힌트의 역할을 합니다. 저는 제목을 짓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데요, 제목도 일종의 나레이터로써 제 작업을 조용히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상징물들은 작업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단순한 구도를 위한 배치이기도 합니다.



Q. 흑백드로잉의 경우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실제로 꿈이나 환상, 혹은 어떤 특이한 경험 등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도 있을까요?

꿈과 환상 그리고 경험이 모두 뒤섞여있는 것 같아요. 저는 꿈을 주로 흑백으로 꾸는 편인데, 꿈에서 느꼈던 것들이 아주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않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받았던 감정들, 예를 들어 공포나 야릇함, 긴장감, 호기심 등은 메모해 두었다가 적극적으로 작업에 반영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경험들은 주로 어린시절에 읽었던 동화책의 장면이나 추억에서 오는 것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Q. 작가님이 묘사하신 인간은 매혹적이면서도 동시에 억압되거나 구속되었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간, 특히 여성으로써의 인간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예. 특히 저는 '여성'에 집중합니다. 지금까지 제 작업의 인물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오랜 역사속에서 부터 어쩌면 현재까지 여러가지 금기들에 의해 억압되어져 왔던 여성들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현재를 살고있는 한 사람의 여성작가로써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김지희, 슬프지만 진실, acrylic marbling on canvas, 130*162cm, 2009


Q. 홈페이지에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모아두셨더라구요. 기억에 남는 최악 혹은 최고의 비평이 있다면요?

음, 저는 아직 많은 비평문을 받아보질 않아서... 저에겐 모든 글이 참 좋고 소중합니다. (웃음) 특히 그런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제 작업이 여러가지 방향으로 해석된것을 발견할 땐 신기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Q. 지금도 난지 스튜디오에 계시고, 레지던지에 많이 참여하신 것 같습니다. 레지던시가 작가님께 끼친 영향이 있을까요?

레지던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가지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에게 영감을 얻기도 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 하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경험이죠. 그런 면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좋아하는 작가나 존경하는 작가가 있다면?

쥴리안 오피, 마크 로스코, 조지아 오키프, 데이비드 호크니를 좋아합니다.




Q. 창작 활동 이외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작업을 안할 땐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열심히 봅니다! 거의 안 본 드라마가 없는 것 같아요. (웃음) 프랑스영화도 좋아합니다. 특히 프랑소와 오종 감독 영화를 선호해요.

그리고 추리소설을 엄청 좋아합니다. 추리소설을 읽을땐 집중도가 배가 되는 기분이예요.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추천해드립니다.



Q. 어딜 가든 꼭 함께 하는 애장품이 있으시다면? 정말 얼룩말의 머리를 작업실이나 집에 소장하고 있지는 않으신지?

일본드라마와 좋아하는 음악들이 가득 채워져있는 mp3, 바닐라 라떼, 얇은 추리소설 한 권!!
아직 얼룩말의 머리는 없어요. 언젠가 갖게 되길...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계획, 짧막하게 소개해주세요.

열심히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한 작업들로 보여드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구요. (웃음)





솔직하고 빠른 답변을 주신 김지희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봄볕 아래에서 따뜻한 정취를 느끼며 잡담처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거듭된 황사와 눈발, 한파 등으로 서면인터뷰로 대체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프랑소와 오종을 좋아하신다니 왠지 작품에서 뤼디빈 사니에르의 요염한 몸짓이 느껴지는 듯 하고, 또 '모방범'을 추천하실 땐 영화 <카피캣>에서 보았던 씬들이 떠오르며 작가님의 <슬프지만 진실>이 연상되기도 했다. 언젠가 얼룩말의 머리를 배경으로 라떼차를 곁들여 추리소설에 대한 썰을 풀 그 날을 고대하며...

마지막으로 인터뷰 질문을 위해 함께 수고한 플린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