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현, Space-ritual Cave, 97*130cm, oil on canvas, 2009

일시 : 2009.10.15~2009.11.08
장소 : UNC 갤러리

영원을 따르는 성배. 그것을 언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막힌 하수구 속에,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우체통 속에, 혹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의 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라보고 있지만 모를 수도 있고, 알고는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을 수도 있다. 의미는 찰나에 발생한다. 지용현 작가의 고민은 찰나에 있다.

지용현 작가는 바라보는 이를 미로 속에 빠트린다. 환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작가의 작업은 영원히 지속되는 어떤 것을 찾아 헤매인다. 어느 순간 그것은 동굴에 있고, 또 어느 순간엔 강변에 있다. 때때로 인간의 뇌 속에 있기도 한다. 화려한 색채는 금속적인 윤기를 띄고, 조그마한 자갈들은 떠올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일상은 산산히 부셔져 낯설고 익숙한 장소로 재조립된다. 기원을 탐색하는 지용현 작가에게 일시적인 형태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삶 속에서 모든 것은 사라져가고, 또 새롭게 나타난다. 낭만주의의 '생성을 위한 파괴'는 작가의 작업을 수식하는 데에 빠뜨릴 수 없는 용어가 된다. 끊임없는 윤회에서 마지막까지 남을 어떤 것. 아베스타(Avesta)에서 파괴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Dawn of Chaos(혼돈의 새벽)>전에 들어서는 이들은 작가의 성소에 발을 디딛는 이들이다. <Space ritual> 연작은 보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다양하지만 반복적이고, 화려하지만 어두침침한. 그리스 신화의 미로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정신의 확장을 기도한다.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캔버스는 시를 낭송한다.

지용현 작가의 작업은 딱히 어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익숙한 삶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낸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로가 펼쳐놓는 서사엔 문학적인 직관이 요구된다. 어떤 것에 대한 믿음(더 좋은 표현이 필요하지만)이 없다면 쉽사리 납득하기도 어렵다. 정신의 작업.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신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