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친구-노란모자, 캔버스에 유채, 162×112cm, 2009
출처 : 네오룩닷컴

일시 : 2009.09.23~2009.09.29
장소 : 성보갤러리

친구라는 말은 참 흔하게 쓰이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어릴 적에야 모든 사람이 친구라지만, 조금 나이가 들고 급우라는 단어를 알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폭은 점점 줄어들어간다. 몇해전 필자가 참여한 지극히 친분에 기인한 프로젝트 창작그룹의 첫 발을 내딛는 자리에서 은사님이 축사를 하셨더랬다. 그 분의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 감동을 남긴다. "이 분들은 제 친구들입니다."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어떤 작가의 말처럼 일상의 삶은 무의미한 관계들로 지쳐간다. 아직도 여전히 인생의 여정은 친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이미 있던 친구들조차 잃어버리는 게 다반사인 것 같다. 이기정 작가의 전시는 어떤 회한이 있고, 어떤 추억이 있으며, 어떤 슬픔이 있는, 어릴 적 친구의 초상을 찾아떠나는 여행이다.

이기정 작가는 빛이 바랜듯한 변색된 느낌의 파스텔톤으로 인물들의 초상을 재치있게 그려낸다. 풍선껌을 부는 친구들은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로 폼을 잡고 있다. 세상에 대해 한없이 불만이 많았고, 마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사춘기 시절. 기타를 치며 해변을 걷는 모습이 담긴 <해변에서-기타맨>이나 오토바이 앞에서 무관심하게 시선을 돌리며 앉아있는 인물이 그려진 <해변에서-휴식> 등,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하면서도 그걸 애써 부정하려고만 했던 친구들의 옛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번 전시는 작년 5월의 '갤러리 영'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친구>들이 좀 더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다소 거칠고 실험적인 추상이 강했던 작년에 비해, 안정되고 일관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듯한 작가의 변화가 흥미롭다. 보다 분명한 구체성을 지니는 올해의 <친구>들에선 일러스트적인 왜곡과 약간은 우울한 느낌이 드는 색감으로 이기정 작가의 정제된 언어를 맛볼 수 있다. 풍선껌과 풍선같은 얼굴의 유사성에는 좀 더 유연해진 작가의 은유적인 냉소가 담겨있는 듯 하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쓴 맛을 알아갈수록 친구라는 단어도 점점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녀간다. 각자에게 친구가 어떤 의미를 지닐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기정 작가는 비록 마주하고 있지만 좀처럼 솔직한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 친구들을 관찰한다. 삶은 표정만큼이나 깨지기 쉽기에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