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09.03~2009.09.13
장소 : 공근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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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듣느니 한 번 보는 게 낫다'라는 속담처럼, 정확한 판단은 항상 직접 체험하는 데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묘사가 뛰어나면 뛰어난대로 기대가 너무 커져버리는 경우도 있고, 때때론 너무 부실한 묘사로 인해 보기도 전에 이미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삶의 지혜인 것 같다.



강이연 작가의 이름을 들은지는 벌써 한 4~5년은 되었지만, 전시소개로 본 작가의 전시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기억으로만 남긴 채 넘겨버리곤 했더랬다. 우연히 삼청동길을 지나가다 낯설지 않은 전시안내천막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는 앞서 말한 속담을 떠올려야만 했다.

전시장의 암막을 헤치고 무심코 작품을 바라보게 되면 깜짝 놀라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을 듯 하다. 어두운 공간에서 하얀 패널에 투사되는 설치영상이 주는 첫느낌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이라면 다소 마음을 준비를 해도 좋을 정도로 약간은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간결하게 구성된 영상에는 마치 저 편에서 이쪽으로 뚫고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듯한 누군가의 움직임이 있다.

작가는 전시소개에서 자신의 작품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전시는 매우 불편하다. 이처럼 긴장감 넘치는 몸짓이 빔프로젝트로 쏘아지는 영상에 불과하다는 게 불편하고, 영상이라는 걸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는 착각에 또 한 번 불편하다. 예술은 모방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 플라톤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강이연 작가는 비디오로 제작된 영상을 투사하는 이중의 왜곡을 통해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에 도전한다.

흔히 인터넷을 가상현실이라고 부르며 현실세계와 구분짓는 경우가 많다.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는 마치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되게 하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는 서양의 오랜 철학적 전통이 굳이 뇌와 영혼을 구분하려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노력인 것 같다. 뇌 속에서 벌어지는 신경작용이 영혼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듯이,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전기적신호 또한 현실세계의 한 부분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투사되는 영상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얇은 경계선 사이에 있다. 가상 속 세계를 뚫고 나오려는 듯한 몸부림은 마치 금방이라도 경계를 허물어트릴 것만 같다. 하지만 이는 결국 영상에 불과하여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몸부림이다. 강이연 작가는 어쩌면 미디어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미지에 갖혀져가는 익명의 존재에 대한 표상을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