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09.03~2009.09.25
장소 : 옛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터 / 아트선재센터

2006년 <Somewhere in Time>의 예술 속의 시간, 2007년 <Tomorrow>의 컨템포러리 아트를 통한 미래보기, 2008년 <I have nothing to say and I am saying it>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이어, 플랫폼 2009 <Platform in KIMUSA>는 공간이라는 테마로 앞선 플랫폼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풍성함을 가지고 찾아왔다. 국내외의 내놓으라하는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했기에, 그에 앞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전시이다.

기무사 건물로 들어서면 공간 안에서 살아갔던 시대의 폐쇄성을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전시공간 곳곳은 쾌쾌한 냄새와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건물은 건축가의 손에서 시작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완성되는 것만 같다. 기무사 건물은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었으며 또한 한국현대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시대의 증언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왠지 건물을 빼곡 메운 작품들도 무겁게 다가온다.

현재 트렁크갤러리(2009.09.03~09.27)에서 개인전을 진행중이기도 한 곽현진 작가의 교복입은 여학생들을 주제로 디테일이 주는 메세지가 있는 사진작업이나 벵상 가니베(Vincent Ganivet)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Roue> 등은 1층 전시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할 작품들이다. 성균갤러리(2009.09.23~10.05)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는 전소정(Jun Sojung) 작가의 목탄작업 또한 상당히 이색적이다. 어두운 공간 속에 배치된 2개의 그림, 이를 비추는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반사되며 남기는 빛의 흔적을 통해 기무사라는 암울한 공간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다.

2층의 아이코 미야나가와 덴마크의 예술가그룹 AVPD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단연 기억에 남을만한 공간에 대한 탐구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나란히 붙어있는 이들의 전시는 각각 문과 거울을 사용하여 어둠 속의 미로와 백색의 미로를 구성해낸다. 또한 이미 플랫폼 프로젝트에서도 여러차례 초청받은 백승우 작가의 공간사진도 하나의 감상포인트가 될 수 있으며, 프랑스 까르띠에 미술관(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이 소장하고 있는 이불 작가의 <오바드, 새벽의 노래>가 우측 어두운 대강당의 한가운데를 장식하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지하의 공간과, 옛 수송부 건물, 그리고 노순택 작가의 전시이다. 지하의 전시공간은 어둠과 답답한 공기가 일단 압도적이다. 크리스티안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시계소리로 가득한 소파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맞물려 극한의 압박감을 준다. 노란형광등 불빛이 세어나오는 수송부 건물에서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Jung Jae-il)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한 음향공간 또한 공간이 가진 특수한 느낌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작업으로 눈총을 받았던 노순택 작가의 작품이 옛 기무사령부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번 전시가 온전히 만족스럽다라고는 평할 수 없지만, 한국현대사의 상징적인 장소를 통해 도시가 지닌 공간성을 탐구한다는 데에서는 상당한 의의가 있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가 <슬픈 열대>에서도 언급했듯이 근대화가 뒤늦게 진행된 젊은 도시들은 빠른 속도로 바뀌려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 도시에 속하는 서울은 국가의 주도 하에 언제나 새로움에 목말라했고 근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배척되어 왔다. 이번 플랫폼 2009은 개인들의 역사로 채워진 서울에 대한 고민이며, 공공예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