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매일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거니?”
“선생님! 얜 배를 탔던 후로 이상해졌어요. 우리랑 노는 것도 싫어한다구요.”
“혹시 배의 선장이 되고 싶은거니? 꿈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란다. 그래도 학교생활에도 충실해야지?”
“선생님! 얜 그냥 배에서 졸면서 꾸었던 이상한 꿈을 현실과 헷갈리고 있을 뿐이에요.
뭐랬더라, 아, 맞다. 물기둥이 널 구해줬다고 했지?”
“물기둥? 그건 정말 이상한 꿈이네. 선생님께 한 번 말해보겠니?”

“그건 꿈이 아니었다구요!”

“웃기지마! 바다에 물기둥이 어딨니?”
“그래, 맞아. 나도 같이 배에 타고 있었지만, 그런 건 못 봤다구.”
“자자, 진정하렴. 선생님도 가끔 너무 생생한 꿈을 꾸곤 현실로 착각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하루의 낮잠 때문에, 이렇게 친구들이랑 소원해지고 학교공부에 소홀해지는 건, 선생님이 보기엔 참 걱정이 된단다.”









‘왜 안 나오는거야? 빨리 그 날처럼 솟아오르란 말야!’
기다리기에 점점 지쳐가던 내게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죠.
‘혹시 오늘도 바다에 뛰어들면, 나타나지 않을까?’

절벽 끝에 다가가서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죠.
무서워서 고개를 가로저어 보았지만, 자꾸 그 생각만 떠올랐어요.
난 눈을 꼭 감았죠.









이얍! 난 또 다시 허공에 매달렸어요.
머리 위엔 하늘, 발 아래는 바다였죠.
내 머리까지 닿아있는 묵직한 구름을 바라보며, 조급함을 후회했어요.
두근거리는 심장과 공기로 가득한 가슴 덕분에 온몸이 저리고 부풀어 오르는 거 같았어요.
이번엔 절벽 가득히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죠.









철퍼덕! 어?
이게 아닌데?
어떻게 된거지?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하얗던 하늘이 노랗게 되어있었죠.
해가 한가롭게 하루를 마치고 이불 같은 지평선을 덮고 있었어요.

응? 뭔가 이상한데? 주위를 둘러보니, 원래 내가 있었던 절벽 위였어요.
분명 바다로 뛰어들었었는데…. 옷도 젖어있었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패어있었죠.
큰 비가 왔었나보네? 그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꿈은 예전에도 많이 꿔봤는걸.
그래도 이런 큰 비를 맞으며 잠을 자다니….









난 부모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 처음 봤어요.
몸이 덜덜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말로 무섭게 혼쭐이 났다는 것만큼은 똑똑하게 느끼고 있죠.
오늘은 감기가 너무 심해 학교를 쉬어야만 했거든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요.
절벽 아래의 물결을 바라보며 물기둥이 뿜어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매일 어김없이 해는 바다 속으로 도망쳤고, 매일 난 부모님과 선생님께 혼이 났죠.
나도 햇님처럼 도망칠 곳이 있었다면 좋을텐데….









“에잇 뭐야! 왜 안 나오는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야호하며 힘차게 고함도 질러보고, 절벽 위의 돌맹이도 모두 바다에 던져보았지만, 헛수고였답니다.
기다리다 지친 난 다시 한 번 강한 유혹에 빠졌죠.
막 소리를 지르는 순간, 울타리섬들 사이에서 갑작스러운 소용돌이가 일었어요.
난 멈춰선 채, 그야말로 오랜만에 평화로운 바다의 수면을 깨우는 소박한 장관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죠.
마치 물기둥을 뿜어낸 주인공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 날 밤, 꿈속에서 동굴 안을 헤매고 있었죠.
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만이 은은히 감돌았어요.
동굴은 무척이나 큰 거 같았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도저히 알 수 없었어요.
무엇인가가 이따금씩 번쩍거렸는데, 난 그 반짝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호흡까지 가다듬었지요.
저편에서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물결 사이로 자그마한 배들이 토해놓는 조그만 빛들이 귀엽게 움직이고 있었죠.









어느 순간 난 무언가에 감싸 안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약간 숨이 가빠졌고, 발밑으로 축축하면서도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바위 비슷한 걸 밟고 있었죠.
그러면서도 비로드천처럼 부드럽고 포근했죠.
마치 까만 안개를 덮고 있는 듯,
눈앞이 뿌연 어둠으로 가득했고, 몸이 붕 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잠시 내 주위가 요동치더니, 까만 색채들이 춤을 추고 있었죠.
까만 산들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는데,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익숙해 보였죠.
그건 바로 울타리섬이었던 거예요.
밤빛이 세상을 덮은 가운데에서도 그건 정말 구슬처럼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