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rage : Act 3, Scene 1 #1, variable size, digital print

The Mirage

"어떤 시점부터는 돌아갈 수가 없다. 그곳이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 카프카

그는 3막 앞에서 자신을 버릴 수 있었다. 자신의 영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의 껍질에 집착할 필요는 없게 됐다. 벌거벗겨져 더 이상 아무 것도 갈망하지 않았다.


3막 : 귀속 歸俗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벗어나 주변은 조용하다. 진공 상태. 그는 자신의 껍질 밖에 있다.
어디선가 쨀깍소리 들려온다. 모래 위에 파묻혔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모래를 파서 시계를 꺼내 시간의 간격들을 부순다. 그러나 쨀깍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또 다시 모래를 판다. 시계를 꺼낸다. 시계를 부순다. 그래도 쨀깍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모래는 시간의 알갱이. 왔던 길의 흔적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앞으로 가는 수밖에...

그의 앞에는 세 가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

시간의 바퀴들, 달빛 아래 묘지, 바닷가





The Mirage : Act 3, Scene 1 #2, variable size, digital print

1장 : 시간의 바퀴들

왜 그렇게 급했을까요?
누나, 나는 숨지 못했어요.
문 안으로 급히 들어간 사람이 문을 잠가 버렸어요.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요. 그게 세상일까요? 그 문은 모두에게 열릴 듯하면서도 오직 한 사람만 원해요. 밤새 울었어요. 나에게 시간은 없어요. 누나의 노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시 부를 수는 없어요. 그건 누나의 노래니까요. 아름답게 부서지는 선율이니까요.

오후 세 시, 창가에서

보이는 고양이란 고양이는 모조리 잡으려고 달려들었던
꿈에서 쫓겨나
오렌지색 커튼을 들어 올리면
거리는 언제라도 오렌지처럼 울 태세이고
공기는 오랜 벽지 마냥 찢겨져
헐거운 튤립 문양들이 먼지로 날리고
나는 공기이다
이런 이유로 너는 숨이 갑갑하다

사랑이 아직도 맴돌고 있음을 믿게 했던
오후 세 시

벽시계는 어쩌다 목을 맨 여자처럼 보였다.
나는 외출한다.





The Mirage : Act 3, Scene 1 #3, variable size, digital print

오후 세시 삼십 분, 플랫폼에서

3호선과 4호선 환승역에서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아요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의 플랫폼

아무 것도 달갑지 않아요
누군가 떨어뜨린 오렌지 향기
누군가 떨어뜨린 껌종이의 문양
누군가 떨어뜨린 혼잣말

아무 것도 달콤하지 않아요
시간 사이로 길을 낸 풍경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요
더러는 책을 읽고
구두코에 먼지를 닦고
아무 것도 달갑지 않아요

노란 스카프에는 관심이 없고
어린 아이의 미움에는 관심이 없고
구걸에는 관심이 없고
안내문에는 관심이 없어요
음악은 흘러가니
멈출 수 없으니
버려두는 거예요

광신도가 예수 재림을 외쳐요
미치광이가 세상에 종말을 외쳐요
젊은이가 이유 없이 욕을 해요
한쪽 벽에 금이 가고 있네요

하지만 보고 또 봐도
벽일 뿐이에요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아요
오후 세 시 삼십 분
3호선과 4호선 환승역

누구나 알고 있는 장소
누구나 알고 있는 시간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