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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결성된 러시아 개념미술그룹으로, 타티아나 아르자마소바(Tatiana Arzamasova; b.1955), 레프 에브조비치(Lev Evzovitch; b.1958), 에브게니 스뱌츠키(Evegeny Svyatsky; b.1957)를 중심으로 블라디미르 프리드케스(Vladimir Fridkes; b.1956)가 1995년에 합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많은 정신질환의 원인에는, 정신분석학도 당연히 헤아리지 못한 진실에 대한 갈증, 그리고 모든 <인간 질서>라는 것 속에 들어 있는 폭력과 기만에 대한 막연하지만 근본적인 항의가 있다. (르네 지라르 지음, 박무호 옮김, "폭력과 성스러움", '제7장 프로이트와 외디푸스 콤플렉스', 민음사, p. 265-266)


현대사회에서 폭력은 공포이자 성취이다. 거의 매일마다 영화와 TV에선 누군가 다른 이를 정복하는 모습을 칭송한다. 학교와 직장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대부분 역시 경쟁레이스 안에서 누군가를 이기고 스스로를 돋보여야만 한다. 문명으로 치장된 현대에서 폭력은 점차 무기의 모습을 감추고 스스로를 교묘하게 위장해간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모두가 심각한 감성의 괴리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인권을 말하면서도 성적 앞에서는 어떠한 관용도 찾아볼 수 없고, 여성의 인권을 말하면서도 다이어트 앞에서는 그저 성적 대상으로 대할 뿐이다. 현대에 대한 단면적인 표상들. AES+F는 몽둥이를 들고는 이러한 잠재된 폭력들을 정벌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AES+F, Islamic project, new liberty, lambda print,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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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된 풍경, 희극이 된 현대. 로마 네로황제기의 시인 페트로니우스(Petronius)의 싯구를 딴 <The Feast of Trimalchio, 2009>에선 요리사가 골프채를 들고 휴양객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서양과 동양, 상류층과 하류층을 대비시킨 '주인(master)'과 '시종(servants)'의 관계는 로마황궁으로 재현된 리조트호텔 안에서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다. <Islamic Project, 1996-2003>와 <Europe-Europe, 2007-2008>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현대를 변주한다. 만약 서구문명이 역사의 승리자가 아니었다면, 폭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선택했더라면, 과연 현대는 어떠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지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히잡을 쓴 자유의 여신상, 네오나치와 사랑을 나누는 터키여성 등은 역사 속의 폭력과 현재의 폭력을 대비시키며 자연스러운 맥락을 이끌어낸다.

진주목걸이로 여자를 질식시키며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Othello.Asphyxiophilia, 1999>나 외계비행체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중화기를 들고 비장한 표정을 짓는 <Action Half Life, 2003-2005>에선 현대의 일상에 대한 신랄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미디어와 자본, 신기술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진풍경. 뉴스에선 연일 3D TV와 같은 신기술에 대한 환상을 제조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실상 사람들이 그런 진풍경 안에서 볼 수 있는 건 고작해야 <Last Riot, 2005-2007>처럼 잔인하고 자극적인 게임이거나 혹은 보다 실제처럼 느껴지는 포르노에 불과하다. AES+F의 작업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착찹한 분노에, 또 한편으로는 낯선 슬픔에 젖어들게한다. 문명 안에서 천사와 악마는 다를 게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