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희, 소파-이삿짐,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목탄, 182*172cm, 2009
출처 : http://neolook.com

일시 : 2009.11.12~2009.12.12
장소 : 갤러리 루트(논현)

가끔은 어두운 밤의 거리를 홀로 정처없이 거닐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로 가득 북적이던 텅 빈 거리는 낭만보다는 고독감이 감돈다. 밤마다 도시는 폐허가 된다. 정석희 작가의 회화를 볼 때면 항상 이런 기분에 휩싸인다. 그는 존재의 폐허를 그리는 사람이다.


2007년 그의 <소파> 연작을 처음 접했을 땐 무척 고집스러운 작가일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목탄을 주로 사용한 색이 바랜 듯한 채색감, 깔끔하고 시원한 화면분할, 창문 밖으로 세밀하게 표현된 배경과는 달리 명암만이 살아있는 주제. <소파> 위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인물들은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짙게 깔린 그림자로 얼굴을 숨겼다.

뉴욕에서 돌아온 정석희 작가는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금호동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갔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았던 장소, 하지만 이제 추억은 잊혀지고 사람들도 떠나갔다. <금호동 산7번지>의 연작에서 작가는 추억을 재생하려고 들지 않았다. 무덤덤하고 차분한 어조가 향수를 억누른다. 그의 작업은 키치, 콜라쥬 등 현대적인 감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고전의 연속도 아니다. 그보다는 근대적인 문학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일종의 체념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이 별의미가 없는 작가의 작업은 <How to Cross a River>로 흘러간다. 작품경향에 생각해볼 때, 강을 건너는 법이라는 전시제목이 흥미로움을 더한다. 대지를 가로지르며 이곳과 저것을 갈라놓는 강. 끊임없이 흘러가며 어떤 것을 떠나보내는 생명의 장소. 여전히 작은 시냇물을 사이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그저 걸어서 강을 건너는 인물의 맞은 편엔 아무도 없다.

182cm*172cm의 대작, <소파-이삿짐>과 같은 작업은 치열함을 넘어선 압박감마저 감돈다. 어찌보면 참 답답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극도로 감정이 배제된 무덤덤함. 고독한 존재는 강을 건너려고 뛰어들었을 때의 차가운 냉기를 기억한다. 그래서 좀처럼 건너려 들지 않지만, 하지만 또 떠나지도 못한다. 체념들이 폐허처럼 쌓여간다.